미국과 러시아로 나뉘어 전 세계가 꽁꽁 얼어붙어 냉전의 와중에 있던 1988년 북극 알래스카에서 벌어졌던 '기적'같은 이야기다.
두꺼운 빙벽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간신히 숨을 쉬는 회색고래 3마리의 모습이 우연히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먹이를 찾아 알래스카까지 왔다 길을 잃은 회색 고래 가족 이야기는 어느덧 국제이슈로 떠오르게 되고 조용했던 알래스카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다.
그러나 그곳의 모습은 그다지 평화스럽지만은 않다. 우선 회색 고래 구출에 필요한 쇄빙선을 지원해준 석유회사의 의도가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가슴 따뜻한 동물애(愛)보다는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을 때 주어지는 친환경적 기업 이미지가 더 중요해 보인다. 알래스카를 가득 메운 언론도 썩 반갑지만은 않다. '시청률이 높아야 고래 구조 작업이 계속 될 수 있다'는 나름의 변은 이해되지만 구출보다 당장 내보내야 할 영상에 집착하는 그들에게 불편한 마음이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당시 레이건 미국 정부도 이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순간 정치적 판단으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여 말뿐인 지원에 지나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빙벽에 갇힌 회색 고래의 생명을 진정 중요시 여기는 이들이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이 상황을 그저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는 순간으로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의심이 드는 순간 영화는 반전을 모색한다. 지역 주민과 미군, 대립했던 석유 회사와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가 힘을 모은다. 대립각을 세웠던 미국과 러시아는 연합 구출작전을 펼친다. 러시아의 쇄빙선으로 거대한 빙벽은 부숴진다. 회색 고래를 통해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빙벽도 조금씩 허물어진다.
알래스카 올 로케 촬영과 현지 주민들의 열연도 극의 흥미를 배가하는 요소다. 빙벽 사이 작은 구멍에 온 세상의 눈과 귀가 모였던 1988년의 어느 날에 벌어졌던 실화를 배경으로 기적과 감동의 순간을 따뜻하게 그려낸 영화다. 그린피스 자원봉사자 '레이첼'(드류 베리모어)의 활약이 돋보인다. 9일 개봉. 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