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심층진단] 국책은행을 정권 시녀로… 춤추는 정책에 경영전략도 표류

■ 정권따라 뒤바뀌는 공공기관 지정해제<br>정부 정책금융 강화 방침에 산은·기은 2년만에 원상복귀<br>방만경영 해소못한 거래소는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 힘입어 <br>4년만에 해제될 가능성 커

서울 여의도의 산업은행 건물이 말끔하게 정돈돼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에서 공공기관으로 다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정책의 일관성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서울경제DB



"산업은행은 공공기관 재지정을, 한국거래소는 해제를 재검토하겠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일 국회 기획재정위 종합감사에서 내년도 공공기관 지정 및 해제 검토 기관을 언급하면서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공기업 관리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2년 전만해도 주위의 강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에서 제외했던 산업은행은 원상복귀를 추진하는가 하면 2009년 공공기관 지정 이후 방만 경영을 해소하지 못한 거래소는 지정 해제를 검토하는 등 원칙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경제 수장과 최고경영자(CEO)에 따라 춤을 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이 제정된 후 정권의 입맛에 따라 뒤바뀌어온 공공기관의 지정∙해제 문제가 새 정부 들어 또다시 되풀이된 셈이다.

◇산은∙기은…2년 만에 '공공기관' 원상복귀할 판=정부는 매년 1월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그해 공운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공공기관을 새로 지정하거나 제외한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예산과 인사권 등에서 정부의 통제를 받고 경영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산은금융지주와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은 지난해 1월 회의에서 공공기관에서 제외됐다. 산은의 경우에는 이명박 정부의 실세였던 강만수 당시 산은금융지주 회장 시절 "내가 자리를 걸고 공공기관 지정해제를 관철시키겠다"고 밀어붙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에도 산은과 기은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부의 손실보전 등 특례조항이 각 기관의 설립 근거법에 명시돼 있어 국가보증채무와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8년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상 민영화를 추진했던 다른 기관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는 당시 기업공개(IPO)와 지분매각 등 성공적인 민영화 추진을 위해 공공기관에서 이들 기관을 제외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들 은행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으면 인력운영과 예산집행상 제약 때문에 경쟁력 강화 및 투자 매력도 제고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공공기관 재지정을 검토하겠다'는 현 부총리의 발언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의 공공기관 관리 정책이 2년 앞도 내다보지 못한 것이다. 물론 새 정부 들어 산은∙기은의 민영화가 사실상 중단됨에 따라 공공기관 해제 사유가 사라졌다는 정부 측 논리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산은 민영화가 중단되더라도 IPO는 계속 추진할 것이며 정부 재정 지원 없이도 채권발행 등으로 자본확충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기은도 전체 지분 중 23.7%가 이미 시장에 매각된 상태이고 정부도 보유지분 15.1%를 연내에 매각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민영화는 중단됐지만 두 기관의 IPO와 지분매각은 계속 진행 중이다. 굳이 2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기관 재지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느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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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의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산은과 기은의 민영화 중단을 이유로 공공기관 재지정 문제를 꺼내고 있지만 실상은 정책금융을 강화하려는 현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는 의도가 더욱 짙다"면서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면 예산과 인사권 통제를 받으면서 정부 시책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대로 가는 거래소=원상복귀하는 산은∙기은과 반대로 한국거래소는 4년 만에 공공기관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현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국감에서 "한국거래소가 자본시장법 개정 이전에는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면서 "지정 해제 여부를 내년에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거래소는 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후 올해로 4년째다. 정부 지분이 없는 민간회사이지만 증권시장 규제와 감시업무 등 공적인 업무 수행과 독점적인 사업구조 탓에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 그동안 수차례 정부 측에 공공기관 해제를 요구했지만 '독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공공기관 지정 이후 국정감사 때마다 고액연봉∙전산사고∙방만경영 등의 지적을 받은 것도 공공기관 해제의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거래소는 내년에 공공기관에서 해제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자본시장법이 통과되면서 복수거래소 설립이 허용돼 독점체제는 자연스럽게 경쟁체제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부산 지역 민심과도 관련돼 있다. 정부는 올해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검토했다가 공공기관 평가에서 방만경영ㆍ실적악화 등으로 하위등급인 D등급을 받는 바람에 이를 철회했다. 하지만 다시 현 부총리가 '공공기관 해제 재검토' 의사를 밝히면서 가능성은 높아진 상황이다. 거래소의 독점 지위가 해소될 것이라는 게 가장 큰 이유지만 박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점이 공공기관 해제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얘기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의 일관성, 규제의 안정성 측면에서 볼 때 산은ㆍ기은ㆍ거래소와 같은 큰 규모의 기관에 대해서 공공기관 지정이 왔다갔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공공기관 지정∙해제를 결정할 때는 신중한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홍엽 국회예산정책처 공공기관평가과장은 "공공기관 지정과 해제를 정부가 임의적ㆍ자의적으로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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