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채권단이 ㈜STX의 자율협약에 합의하면서 큰 고비를 넘겼던 STX그룹 구조조정 작업에 뜻하지 않은 암초가 등장했다. 여타 계열사와 달리 상대적으로 재무구조가 탄탄해 산업은행에 인수될 것으로 점쳐졌던 STX팬오션이 실사 결과 부실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인수 작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 당국이 국내 3대 해운사인 STX팬오션이 무너질 경우 국내 해운산업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막판 조정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당초 채권단이 계획했던 STX그룹의 구조조정 일정에는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STX 구조조정 새 암초로 떠오른 STX팬오션=STX 채권단은 큰 틀에서 유동성 위기에 빠진 STX그룹을 조선업을 중심으로 재편할 계획을 세웠다. 그룹 지주회사인 ㈜STX를 정점으로 STX조선해양ㆍSTX중공업ㆍSTX엔진 등 조선업 계열사들에 대해 자율협약을 맺은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채권단은 이런 구조조정 구도를 설계하면서 STX조선해양과 함께 그룹의 양대 축을 형성했던 해운사인 STX팬오션은 산업은행이 인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채권단이 STX조선해양 등 조선 분야 계열사에 대한 지원에 집중하는 대신 STX 팬오션은 산은이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인수한 후 적절한 시점에 시장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예비실사 결과 STX팬오션의 장부가치가 '제로'에 가까울 만큼 자산이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당초 계획이 꼬이게 됐다. STX팬오션의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현재 조선업 계열사를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데도 다른 채권은행들을 설득하느라 힘을 소진하고 있는데 또 다른 부담이 생긴 셈이다.
◇금융당국 압박 속 제3의 대안 찾을 듯=산은이 일단 내부적으로 '인수 불가' 방침을 정했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 금융당국이 STX팬오션을 어떻게든 살려야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비실사 결과 장부가치에 기록된 자산이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지만 이는 평가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STX팬오션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실사 결과가 나쁘게 나온 것은 STX팬오션이 보유한 선박에 대한 현재 가치만 고려하고 이 선박들이 장기 운송 계약 등을 통해 미래에 벌어들일 가치는 배제했기 때문"이라면서 "STX팬오션은 재무구조가 탄탄하기 때문에 유동성 지원만 잘 된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산은이 금융 당국과 협의해 제3의 대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산은은 인수를 포기하자니 정부 방침을 거스르는 것이라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인수를 감행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형국이다. 결국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 규모를 줄인 뒤 산은 주도로 제3자에 매각하는 방안이 산은 안팎에서 제기된다.
또 채권단에 채무 상환 유예와 대출이자 감면 등 고통 분담을 전제로 STX팬오션 인수를 추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산은 관계자는 "만약 인수를 한다면 산은이 100% 고통을 분담할 순 없다"면서 "산은 PEF가 인수를 하더라도 그 전에 채권단이 대출금 회수 자제와 채무 상환 유예, 대출이자 감면 등 일정 부분 양보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STX 채권단은 이날 STX중공업과 STX엔진에 대한 자율협약 체결에 동의하고 긴급 운영자금 1,9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