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박영옥 에너지기술연 박사

새해 첫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을 수상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영옥 박사는 21년동안 필터 연구의 외길을 걸어온 `필터의 아버지`로 불린다. 필터는 정수기, 자동차, 항공기, 공장, 발전소 등에서 먼지나 유해물질을 걸러내 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를 통칭한다. 특히 아직까지 산업현장에서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지구촌 청정 환경을 유지하는 데 고성능 필터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종전의 필터는 주로 단순 입자만을 걸러내는 데 사용돼 왔지만 최근에는 1㎛ 미만의 미세입자와 가스 물질도 동시에 제거할 수 있는 기능성 집진필터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박 박사는 이 분야에서 선진 기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독보적 위치를 차지해왔으며 이번에 집진필터에 복합적인 기능을 부여해 광범위한 분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았다. 그가 개발한 복합기능 필터의 핵심기술은 크게 네가지다. 첫번째, `미세다공질 표면층 형성 핵심기술`로 필터에 마치 방탄복처럼 강력한 표면막을 형성시켜 쉽게 마모되지 않도록 한 기술이다. 먼지가 특히 많이 발생하는 시멘트 공장 등에서는 먼지 때문에 필터가 쉽게 마모되는데 박 박사가 개발한 필터를 사용하면 수명을 크게 연장시킬 수 있다. 1년 이하이던 필터 수명을 3년까지 늘려주는 데다 시멘트 먼지를 버리지 않고 다시 활용할 수 있어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두번째, 질소산화물 처리(DeNOx)와 먼지처리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한 기술이다. 질소산화물은 화석연료를 많이 쓰는 화력발전소 등에서 대량 발생돼 스모그와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유해물질로, 이를 걸러내려면 먼지처리 필터와 별도의 필터를 설치해야 했다. 질소산화물과 먼지 처리를 동시에 할 수 있게 한 새로운 필터는 설치비와 운전비용을 절반으로 절감해 준다. 세번째, 필터에 자체 형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강도를 부여한 기술이다. 이전에는 얇은 필터를 케이지(cage)라고 부르는 단단한 통 속에 넣어 모양을 유지해 줬지만 박 박사의 기술로 이제는 케이지가 필요없게 됐다. 케이지는 형상 유지라는 단순기능만을 수행하는데도 필터와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켜 쉽게 마모될 뿐 아니라 값도 필터와 비슷할 정도로 비싼 골칫덩이였다.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미세먼지입자 및 염분제거 기능 초극세사웹층 복합기술`로 먼지와 바닷물에 녹아있는 염분을 동시에 걸러내는 기술이다. 대부분 바닷가에 설치돼 있는 가스복합화력발전소의 경우 염분으로 인한 가스 터빈의 마모와 침식이 심각한 문제였는데 나노섬유를 촘촘히 얽어 만든 필터로 이를 크게 개선했다. 박 박사는 이러한 기술들로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독일, 중국 등에 산업재산권을 출원했으며 미국과 일본에서는 기술의 독창성을 인정받아 특허등록이 이뤄졌다. 최근 5년간 집진필터 및 집진 시스템과 관련해 국외 특허 6건, 국내 특허 6건이 등록됐고 국내외 유수 학회지에 18편, 학술회의에 116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 99년에는 과학기술부와 서울경제신문이 제정한 `20C 한국의 100대 기술`로 선정됐고 2001년에는 과학기술훈장 도약장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일본에서는 올해부터 소각로 시설 등에 먼지와 다이옥신 등을 제거하기 위한 고효율 여과집진장치 설치가 의무화돼 박 박사의 노력이 외화획득의 결실로까지 연결될 가능성이 열렸다. [인터뷰] "21년 한우물 팠지만 아직 할일 태산" “21년간 오로지 필터 연구에 매달려왔지만 아직도 할 일이 무궁무진합니다.” 박영옥 박사는 필터를 공장이나 발전소에만 쓰이는 부품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생활에도 활용처가 널려 있다며 의욕을 과시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나노기술과 필터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박 박사가 그리는 미래의 연구과제다. 나노섬유 필터로 만든 방탄 군복이나 여성 생리대, 잠수복 등은 당장 연구에 착수할 수 있는 소재다. 기체 상태의 극히 미세한 입자로 존재하는 나노철(鐵)을 군복에 코팅한 뒤 간단한 조작으로 정전기를 가하면 순식간에 단단한 방탄복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들의 범죄 방지용 의류로도 응용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데 연구비가 없어서 못한다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나노 섬유를 활용하면 훨씬 얇고 가벼우며 흡수율도 탁월한 생리대나 기저귀도 만들 수 있고 생체 온도를 인식하는 기능을 적용해 물에 젖지 않는 잠수복 등의 기능성 용품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다는 게 박 박사의 주장이다. 그가 처음 필터 연구에 착수하게 된 것은 화학공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지난 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환경관리기사 시험을 준비하며 집진필터에 대해 공부하다 필터를 지났는데도 검은 유독성 가스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필터를 감싼 케이지가 참혹하게 찢어져 있고 필터 표면은 너덜너덜해져 집진 기능을 상실한 장면은 그에게 큰 충격을 줬다. 82년 에너지기술연구원(당시 동력자원연구소)에 입사해 본격적인 필터 연구를 시작한 그는 88년 처음으로 필터를 국산화하는 개가를 올렸다. 최근에는 인천 주물공단의 12개 업체가 자진해서 생산현장 직무기피요인 해소사업에 참여해 필터를 바꾸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물론 꾸준한 성공 가도에는 실패도 없지 않았다. “수년 전에는 구리 용해로에 필터를 설치하다가 주의 소홀로 공장에 큰 불이 발생한 일도 있었죠. 모든 공정을 환하게 꿰뚫지 못했던 당시 실수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변변한 휴가 한번 없이 `먼지와의 전쟁`을 치러온 지난 20여년 동안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법한 그의 폐는 지금도 완전무결을 자랑한다. 일주일에 서너차례씩 거르지 않고 계속해온 마라톤이 그의 폐를 유해물질로부터 지켜주는 필터 역할을 했다. “계속되는 철야연구에 지치기도 하지만 팀원들과 함께 마라톤을 하고 나면 또다시 의욕이 불끈불끈 솟아납니다. 과학기술자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예전만 못하지만 힘을 내서 과학 입국에 한몫을 해야죠.” 박영옥 박사 약력 ▲79년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89년 성균관대 화학공학박사 ▲93년 미국 미네소타대 포스트닥 ▲82년 한국동력자원연구소(현 에너지기술연구원) 연구원 ▲99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청정에너지연구부장 ▲현재 한국화학공학회 분체공학 운영위원 ▲현재 한국대기환경학회 종신회원 ▲현재 한국에너지공학회 종신회원 <김문섭기자 cloone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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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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