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파벌 독버섯 경제계는 더 심해

■ 빅토르 안 금메달로 본 한국사회 슬픈 자화상

경제 관료 행시 특정학교 독식 금융사 재계도 편가르기 기승


기재부 비고시 출신 1명 그쳐… 서울대 TK 끌어주기 만연

금융계 특정인물 사단 존재… 은행장 선임때 정치권 줄대기


상대 비방 보복인사 관행도

지난해 한 국책기관장에 예상하지 못한 인사가 발탁되자 이 기관의 내부는 벌집 쑤신 듯 뒤숭숭했다. 가장 당황한 표정은 당초 기관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다른 임원에게 줄을 섰던 내부직원들의 얼굴에서 나왔다. 밀지 않은 사람이 수장이 되면서 앞을 예측할 수 없다는 당혹감이 묻어난 것이다. 그 기관장은 발탁된 후에도 기관 내부의 계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이슈는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 선수의 금메달과 한국대표팀의 부진이다. 안 선수는 빙상연맹 내부의 파벌다툼에 엮였다가 부상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배제됐다. 그가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파벌 없는 남의 나라에서라도 운동을 계속하겠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집단 내부에서 특정인에 따라 계파가 갈리는 파벌갈등이 꼭 빙상계만의 관행인가. 우리 사회 상층부를 차지하는 경제계 또한 파벌주의 관행을 갖고 있다.

기수 문화를 중시하는 관료는 물론 출신 따라 갈리는 금융계와 오너 간 갈등으로 임직원까지 갈리는 재계까지…, 대한민국 경제계는 파벌주의의 한복판에 서 있다.

파벌주의가 군사문화의 잔재라는 분석이 있지만 한국 경제계는 지역주의와 학맥까지 더하면서 철옹성을 쌓고 있다. 파벌은 실력보다 배경에 의한 승진을 낳기 때문에 결국 조직의 경쟁력을 무너뜨린다.

또한 파벌이 존재하는 조직은 설령 실력으로 인재를 발탁해도 결국 파벌에 의한 것이라고 깎아내리게 만든다. 전직 청와대 비서관 출신의 한 차관은 "일은 잘했지만 드러나지 않던 사람을 발탁했더니 나도 의식하지 않았던 그와 나의 지연 및 고등학교 학연을 들먹이며 자기 사람 심기라고 평가하더라"면서 "누구를 뽑더라도 결국은 실력보다는 인맥에 의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관료, 서열주의 계파 갈등=경제 분야에서 파벌이 유독 심하고 심지어 파벌을 조장하는 집단이 바로 관료사회다. 행정고시로 대표되는 기수 문화와 함께 서울대 경제학과·법학과 등 특정 대학의 학과 출신 간 끌어주기 문화가 강하다. 행시 출신은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 5급 사무관에서 시작해 40대 초중반에 국장 승진이 자연스럽다. 고위공무원 대부분은 이들 행시 출신이 차지한다. 2009~2013년 기획재정부의 개방형 직위 16명은 모두 행시 출신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3월 이후 기재부에서 5급 공채 출신이 아닌 고위공무원단 승진자는 단 2명에 불과했고 현재 고위공무원단 현원 기준으로 비(非)고시 출신은 7급 공채 출신 1명밖에 없었다. 고위공무원으로 승진하는 데도 행시 출신은 22년5개월이 걸리는 반면 7급은 평균 31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시와 비고시 간 보이지 않는 계층의 벽이 존재하는 이유다. 정부 부처의 한 곳은 고시집단의 파벌주의에 의해 핵심 국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고시 출신이 아닌 인재를 중용해 조직 안에서 경쟁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단언한 것도 이 같은 이유다.


 기재부 등 경제부처의 대부분은 서울대 등 특정 대학이 차지하고 있다. 2011년부터 3년 동안 기재부에 채용된 5급 합격자 79명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39명이 서울대 출신이었다. 다음으로 연세대(23명), 고려대(7명) 등이 뒤를 이어 이른바 ‘SKY’ 출신이 기재부 5급 채용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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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서울대 안에서도 경제학과와 법학대학 출신 간에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다. 법대 출신인 강만수 전 장관은 현직에 있을 때 법대 동문 행사장에서 “10년 만에 재경부에 돌아와 보니 서울대 법대가 손이 끊겨 안타깝다”며 “서울대 법대가 경제학과 나온 사람보다 더 일을 잘한다”고 말해 눈총을 받았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고등학교도 파벌의 대상이 된다. 경기고 선후배가 끌어주고 밀어주는 분위기 속에서 다른 고등학교 출신은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휘문고 출신인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과거 기재부 근무 시절에 대해 “휘문고 출신으로는 처음 과장에 진급했다”면서 “당시 장관이 경기고 출신만 먼저 승진시키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파격’”이라고 회상했다.

 기재부 외청 중 2만여명의 대규모를 자랑하는 국세청 역시 파벌문화가 강하다.

 국세청은 행시와 일반직·세무대학 출신이 계파를 형성하고 있다. 1월 인사에서 비고시 출신을 등용했다는 해석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국세청의 단 3%를 차지하는 행시 출신이 고위공무원의 70%를 이루고 나머지 30%는 일반직과 세무대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대구경북(TK) 출신이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세청 내 2급 이상 고위직 34명 가운데 41.2%인 14명이 TK 출신이었다. 이로 인해 비판여론이 일자 국세청 연말 인사에서는 승진이 예상되던 일부 TK 출신 국장이 퇴임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같은 TK 출신이라도 행시 출신에 비해 비행시 출신이 TK 역차별을 받는 경향이 크다는 게 안팎의 해석이다.

 ◇금융, 갈수록 정치화 심해져=금융계 역시 파벌주의가 심해지는 곳이다. 금융계의 특징은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파벌이 존재한다는 점. 특정 인물을 따르는 계파도 존재한다.

 ‘이헌재 사단’과 ‘김석동 사단’이 그들이다. 이헌재 사단은 이 전 경제부총리가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맡으면서 그와 함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작업을 도맡았던 사람들이다. 이헌재 사단은 금융계에서 주로 활약했다. 기재부와 금융위 등에서 고위직을 지낸 뒤 낙하산으로 금융공기업과 금융협회·시중은행 등에 내려가 상층부를 장악했다.

 당시 이들과 일을 했던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이헌재 사단에 한번 속한 사람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 인맥으로 다른 곳에 재취업하더라”고 전했다.

 이 전 총리가 발탁했던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역시 현직에 있을 때 친김석동파와 반김석동파로 갈리곤 했다.

 금감원 역시 내부적으로는 대졸 출신과 고졸 출신이 보이지 않게 차별을 형성하고 있다. 실력이 있는 고졸 출신도 일정 직위 이상 승진 기회가 대졸 출신보다 적기 때문이다. 그밖에 한은에 있던 은행감독원과 보험감독원·증권감독원·신용관리기금이 합친 금감원 내부는 은감원 출신과 나머지 간에 벽을 두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서는 친박근혜계도 금감원 내부에 존재한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금융회사 중에는 4대 금융지주 내부에서 파벌다툼이 극심하다. KB금융지주의 국민은행은 국민·주택은행이 통합한 지 1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1채널 2채널 간 갈등을 빚고 있다. 또한 강정원 전 행장이 연임하면서 노조와 정치권에 줄을 대며 자신의 파벌을 만들었다. 강 전 회장은 이후 황영기 전 금융지주 회장과 끊임없이 대립하며 보복인사 문화를 낳았다. 어윤대 전 회장 시기에는 고려대 인사 위주라는 불만이 내부에서 끊이지 않았다.

 은행 지도부가 전직 사장을 배임과 횡령으로 고소하는 ‘신한 사태’를 맞았던 신한금융지주도 회장 선임 때마다 전직 임원마다 자신이 미는 후보를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투서를 마다하지 않는다. 한동우 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은 여전히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 우리와 하나금융지주 역시 회장이나 은행장 선임 때마다 각자 미는 후보를 위한 상대방 비방으로 조직 전체가 상처를 입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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