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문제 처리와 관련 정부의 속내가 겉과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져 또 한번 정부신뢰에 스스로 먹칠을 했다.재정경제원은 겉으로는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해결해야 하고 정부의 개입은 없다고 말해왔으나 속으론 채권은행단을 앞세워 기아 목조르기를 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말로는 불개입, 실제로는 개입해온 것이다.
재경원이 기아처리에 개입한 실체는 우선 「기아그룹처리 진행상황 및 향후대책」이라는 이름의 내부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문서는 기아가 채권금융단의 요구사항을 9월29일까지 수용하지 않을 경우 부도처리한후 법정관리를 추진하고 기아특수강은 산업은행 출자과정을 거쳐 제3자 인수를 유도한다는 내용이다. 단서가 붙어 있긴 하지만 기아 죽이기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 보인다.
이 문서가 알려지자 재경원은 사실무근이라고 발뺌했다가 검토는 했지만 폐기 처분한 것이라고 궁색하게 말을 바꿔 변명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채권단의 기아 처리 내용과 일치한다.
재경원이 겉으로 금융자율을 말하면서도 이미 개입·간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거짓말을 해온 것이다.
정부의 기아처리 개입은 강경식부총리의 공개 발언으로 분명해졌다. 그는 기아그룹 경영진이 경영권 포기 각서를 제출하지 않음에 따라 기아 납품 및 협력업체에 추가 자금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는 그동안의 발언을 뒤집은 것으로 정부 개입을 노골적으로 공표한 것이다. 하청업체를 통한 간접적인 기아 목조르기의 의도가 담겨 있다.
재경원의 방향대로 채권은행단도 기아 목조르기에 손발을 맞추고 있다. 채권단이 기아가 자구노력으로 처분한 자산 매각 대금을 회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자력 회생을 봉쇄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홀로서기의 발목을 거는 것이어서 경영정상화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기아 죽이기가 아니라면 자구자금의 일부는 회수하더라도 긴급운영자금으로 쓸 여유를 주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기아 처리를 둘러싼 정부와 채권단의 이같은 조치는 정부가 아무리 부인한다 해도 시나리오설의 무게를 더해 준다.
정부는 이제 더 시장경제 원리와 금융자율을 명분으로 불개입 불간섭을 내세울 수 없게 됐다. 기아문제와 관련된 정책과 금융역할 실패의 책임도 짊어져야 한다.
정부가 겉다르고 속다른 모습을 보이고, 말을 뒤집어 정부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면서까지 기아 경영진 퇴진에 집착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또 기아 회생에는 경영진 퇴진방법밖에 없으며 경영진 퇴진을 위해 그같은 강수를 써야만 하는지, 합리적인 방안과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