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차별의 땅' 오키나와 70년 저항사

■저항하는 섬, 오키나와(개번 매코맥·노리마쓰 사토코 지음, 창비 펴냄)

19세기말 일본의 강제합병·탄압

2차대전땐 태평양전쟁 전장으로 지금도 환경파괴·미군기지 범죄 온상

대안 제시보다 주민 목소리에 지면 할애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 함께 싸워야"


오키나와인은 일본인이 아니었다. 1903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내국권업박람회에는 학술인류관이 설치됐다. 여기엔 당시 식민지 원주민인 류큐인과 아이누인, 대만 선주민, 자바인, 인도인 등이 원숭이처럼 전시됐다. 심지어 조선 남녀 두 명도 포함됐다. 제국주의의 광기에 빠져들던 일본은 그랬다.

다시 10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오키나와는 차별의 대상이다. 기리노 나쓰오의 장편 '메타볼라'는 일본 오키나와를 배경으로 어떻게든 밑바닥 인생을 벗어나려는 두 청년의 분투를 그린다. 결국 현대사회가 청년층의 고통을 먹고 자란다고 비판하는 소설은 오키나와인에의 차별 역시 비슷하게 본 듯하다. 젊은이든 오키나와인이든 도무지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다. 심지어 오키나와인들은 본토 일본인을 '내지인'이라고 부른다. 과거 한반도 일제강점기 때 그랬듯.


오키나와의 70년 저항운동사를 정리한 '저항하는 섬, 오키나와'는 동아시아·일본 전문가이자 호주국립대 교수인 개번 매코맥, 평화운동가 노리마쓰 사토코가 함께 저술했다. 매코맥은 일본 역사에서 오키나와는 그저 군사적 요충지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피부색과 언어, 문화가 달랐던 오나키와인은 점령지 원주민이었을 뿐이다. 일본의 강제 합병과 탄압, 2차세계대전에서의 강요된 희생,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정책 아래 불평등한 지위 등 한국과 오키나와는 많은 측면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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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뿌리 깊다. 19세기 말 완전히 병합되며 '류큐왕국'은 일본의 언어와 문화를 강요당하고 1945년에는 태평양전쟁의 전장으로 활용된다. 특히 3개월에 걸친 오키나와전투에서는 미군의 무차별적 폭격으로 21만명이 사망한다. 이 중 오키나와인이 12만명, 섬 전체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심지어 이 참극에 일본군도 가담한다. 오키나와인을 믿지 못한 일본군은 '강제집단사'시킨다.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어머니를 죽이는 참극을 강요한 것. 또 외딴 섬에 오키나와인을 버리거나 군의 방패막이로 쓰고 직접 학살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제2차대전이 끝나자 이제 '점령군' 미군이 들어온다. 27년간의 토지 수탈과 생활 파괴 끝에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반환'됐지만, 주일미군 기지의 75%가 집중된 이곳은 여전히 환경파괴와 기지범죄의 온상이다. 1995년 3명의 미군이 12살 소녀를 강간한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결국 오키나와는 물론 일본 전역에 반미군기지 여론을 일으켰지만, 미국과 일본 정부는 인근 헤노코에 더 큰 대체기지를 추진하고 있다. 기피시설인 미군기지가 온통 오키나와로 집중되고 있다.

저자는 일본 정부의 오키나와정책을 강도 깊게 비판하지만 대안 제시는 조심스럽다. 대신 주민 인터뷰에 지면을 할애한다. 한 주민은 오키나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1903년 '인류관 사건'을 떠올렸다. "이와 같은 일을 두 번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이 시선에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이런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전세계 사람들, 그리고 이와 같은 시선을 알아채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하는 사람들과 함께 싸워야 합니다." 2만8,000원.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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