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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한은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인한 경기의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선제대응에 나선 만큼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정책에 적극 나서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3%대 경제성장률 달성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터진 메르스 사태를 잠재우려면 통화정책과 함께 재정정책을 패키지로 사용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이후 강조해온 정책조합과도 일맥상통한다. 최 경제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41조원+α'의 확대 재정정책을 발표하고 한은의 정책공조를 일관되게 주문해왔다. 한은은 이에 보조를 맞춰 직전까지 세 차례나 금리를 내렸다. 이번에는 한은이 먼저 금리를 내렸으니 정부가 화답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다. 정책공조가 이뤄질 경우 '기준금리 인하+추경 편성'의 경기부양 패키지가 뜨는 셈이다.
◇추경에 실리는 추의 무게=정부는 과거에도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경제위기뿐만 아니라 경기부양을 위해서도 추경을 편성해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총 16번의 추경 중 10번은 경기부양을 위한 것이었다. 정부가 추경을 편성하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같이 내리는 경기부양 패키지가 떴다. 2003년·2004년·2008년·2009년·2013년이 대표적이다.
이번에는 한은이 금리인하 카드를 먼저 꺼냈다. 미국이 연내 금리인상을 앞두고 있고 국내 가계부채가 폭증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다. 그만큼 현재 경기에 대한 위기감이 크다는 얘기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추경 편성을 미룰 대의명분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이날 금리인하 직후 기자회견에서 "추경 편성 여부는 전적으로 정부가 판단할 사안"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최근까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의 역할론을 강조해왔다. 한은이 현 상황에서 금리를 내릴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노선까지 내린 마당에 정부의 역할론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기재부의 움직임도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재정에 대한 부담은 있겠지만 결국 재정은 수단"이라며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금은 재정 건전성보다 경기 살리기가 더 시급하다는 얘기다.
◇추경의 타이밍과 규모는=추경을 편성할 경우 시기와 규모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선제대응+확실한 신호+충분한 수준'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추경 여부는 이달 말로 예정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를 넘길 경우 통상 한 달 정도 걸리는 국회 심의 등을 고려할 때 자금이 필요한 시기에 제때 집행되기 어려워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추경 시점이 늦춰질수록 예산을 다 집행하지 못하고 불용으로 남게 된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메르스 진전 추이 등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면서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해 하반기 경방에 담겠다"고 밝혔다.
추경의 규모는 현재 경제 규모로 볼 때 적어도 10조~15조원은 돼야 효과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예상되는 세수 결손(7조~8조원)을 벌충하고 내수진작에 추가 실탄을 투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은의 금리인하가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달리 추경은 한정돼 있는 만큼 분야를 선택해 타격하는 요격미사일처럼 사용해야 효과가 있다. 일각에서는 경기부양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금융위기 수준의 '슈퍼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적어도 2013년 수준(17조3,000억원)으로 해야 추경의 의미가 있다"며 "(메르스 사태가 더 확산될 경우 성장률 하락분을 만회하려면) 금융위기 수준(28조4,000억원) 정도는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