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9시 하이닉스반도체 영동사옥.하이닉스 사외이사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박종섭사장 등 3명의 상임 이사들은 잔뜩 굳어 있었다. 10명(사외이사 7명)의 멤버중 제임스 굿지 인텔이사를 제외한 9명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는 시작됐다. 회의장 밖은 경비들로 차단됐다.
회의 초반. 박사장은 논리적인 어투로 마이크론이 제안한 MOU(양해각서) 초안을 설명해 나갔다. 그러나 조용한 분위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사외이사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회의장 밖으로 가끔씩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독자생존 가능성이 없습니까."
"마이크론의 인수 제안이 지나친 것 아닙니까."
"메모리부분을 팔고 나면 비메모리부분만으로 살 수 있습니까".
일부 사외이사들은 "마이크론에 하이닉스의 메모리 부분을 이런 식으로 팔아야 하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사들은 독자생존 방안에 미련을 거두지 못했다. 회의엔 예전 하이닉스 주채권은행장을 맡았던 우의제 전 외환은행장 직무대행도 자리하고 있었다.
사외이사중 채권단 입장을 가장 잘 알고, 독자생존을 위한 채권단 역할을 냉철하게 판단할 처지였다.
이사회는 잔존법인의 생존 장치에 대해서도 난상 토론을 이어갔다.
"메모리부분을 팔려면 잔존법인에 마이크론이 직접 투자를 할 것이란 보장을 분명히 하십시오."
이사들은 점심을 도시락으로 떼우며 회의를 이어갔다. 회의 시작 4시간여. 박찬종 홍보담당 상무가 '이사회 결의내용'이란 짤막한 자료를 돌렸다.
"채권단의 적극 지원을 전제로 독자생존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였음. 불가능하면 잔존법인에 대한 마이크론의 직접투자를 포함한 생존방안이 최대한 보장된다는 전제아래 마이크론과 MOU를 체결할 수 있도록 경영진에 위임하겠음"
의외였다. 기자들의 질문은 독자생존 방안이 선행돼 명시된 이유에 대해 집중됐다. 불과 두시간후 채권단 회의가 열림에도, 이사회는 '독자생존 방안'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박 사장의 의중을 담은 것일까.
6시간여의 마라톤회의. 이사회 멤버들은 회의실을 빠져 나왔다. 한 사외이사는 "빅딜 정책 이후 질곡을 거듭한 하이닉스 운명과 소액주주들의 탄성들이 오버랩됐다"고 말했다.
사외이사들은 소액주주들의 건센 비판을 등에 엎고 조만간 회사의 운명을 건 또 한번의 난상 토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