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한라산' 명칭과 고대 몽골어

김혜정 경희대 혜정박물관장


제주도는 외할머니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필자가 30대 후반에 장애아를 돌보는 사회복지법인을 세운 곳이기도 해 각별하게 느껴진다. 제주를 오가면서 한라산을 보고 그 이름에 대해 궁금해하던 때가 있었다. 20여 년 전의 일이다. 몽골을 여러 차례 오가며 제주의 언어와 풍습이 몽골과 유사함을 느끼던 때였다. 돌하르방에서부터 서낭당을 연상하는 '오보', 수레를 의미하는 '델게지', 산을 말하는 '오름' 등을 접하며 순간 제주도의 한라산이 떠올랐다. 한라산의 '한라'라는 명칭도 혹 몽골어에서 파생된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뜨겁다' 의미 '한라군'서 유래 추정

한라산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불렸는지 아직까지 알려진 내용이 없다.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전국 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의 '제주목'조에는 "진산(鎭山) 한라산은 주(州)의 남쪽에 있고 두무악(頭無岳) 또는 원산(圓山)이라 부른다"고 쓰여 있다. 고려사에는 목종 5년(1002년) 6월에 "탐라산 네 곳에 구멍이 뚫어져 붉은 빛깔의 물이 솟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의 제주목 편에는 "한라산은 고을의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이다. 한라(漢拏)라고 말하는 것은 은하(銀河)를 끌어당길 만하기 때문이다. 혹은 두무악이라 하니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때문이요, 혹은 원산이라고 하니 높고 둥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 권근(權近 1352~1409)은 '응제시'에서 "푸르고 푸른 한 점 한라산, 멀리 물결 밖 아득하오(蒼蒼一點漢拏山 遠在洪濤浩渺間)"라고 노래했다.


이를 보면 우리 문헌에 한라산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멀리 잡아도 이색과 권근이 살던 고려 말로 추정된다. 그 이전에 한라산은 금강산·지리산과 함께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瀛州山)으로 일컬어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처럼 '영주산'으로 불리던 한라산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름이 바뀌었던 것일까. 필자는 그것을 몽골어에서 차용된 것으로 판단한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1273~1294년 고려의 중앙정부와 별도로 제주도와 몽골 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약 20년 동안 지속됐다고 한다. 몽골의 풍습과 언어가 이때 제주도에 많이 전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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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바상자브 간볼드 주한 몽골대사와의 만남에서 한라산과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간볼드 대사에 따르면 고대 몽골어 '한라군(HALLA GGNN)'은 현대 몽골어 '할룬(HALLUN)'으로 변화됐는데 그 뜻은 한국어로 '뜨겁다'라는 것. 그리고 고대 몽골어인 한라군은 이보다 이전에 사용하는 몽골문자로는 '한라(HALLA)'로 발음했다는 설명이다.

제주·몽골어 등 비교연구 확대되길

이에 제주도의 한라산도 '뜨겁다'는 뜻을 지닌 몽골어 '한라'와 산(山)이라는 한자어가 결합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탐라산 네 곳에 구멍이 뚫어져 붉은 빛깔의 물이 솟았다'는 고려의 기록을 봐도 당시 사람들이 한라산을 화산활동을 하는 산으로 인식했다면 이를 '뜨거운 산'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에 해당하는 몽골어 '한라'를 차용해 '한라산'이라고 불렀을 것이라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이때 한라(漢拏)라는 한자어는 신선들이 사는 불로(不老), 불사(不死)의 선경(仙境)으로 인식되었던 당대의 신선사상과 맞물려 걸맞게 차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고찰이 몽골어와 제주도의 지명·언어·풍습 등의 비교연구가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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