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허황된 중소기업 레토릭


또 나왔다. 지난 17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중소기업의 투자회복을 돕기 위해 "정책금융기관의 올해 시설투자자금 공급 규모를 5조3,000억원 추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 달이 멀다 하고 중소기업 지원방안이 나온다. 창조경제 핵심 동력으로 중소ㆍ벤처기업 창업을 콕 찍어놓았으니 안 할 수도 없고 뭐라도 해야 할 테니까.


현 정부의 '중소ㆍ벤처기업 창업과 육성을 통한 창조경제 실현'이란 국정운영 방침은 재탕, 삼탕을 넘어 사, 오탕쯤 된다. 요란하게 중소기업 육성을 떠드는, 마치 대단한 진실을 발견한 양 중소기업을 외치는 모습이 어제오늘 일만은 아니다.

1991년 말 통일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 표를 겨냥, 중소기업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정권을 잡자마자 이런저런 핑계를 댄 그는 결국 KS마크를 주던 공업진흥청을 중소기업청으로 둔갑시켰다. 이때부터 정부와 방송은 마치 국운이 중소기업에 걸린 듯 중소기업 상품전, 공동브랜드 론칭 등 온갖 이벤트를 해댔다.

이에 질세라 1997년 집권한 김대중 정부 역시 중소기업부 설치를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러곤 껍데기 조직인 중소기업특별위원회를 만드는 것으로 '퉁'쳐버렸다. 이어 경기를 살린다며 거대한 벤처버블을 만들어 거꾸로 벤처 싹을 죽였다.

데자뷔다. 요즘 나오는 대책들 역시 천편일률이다. 국민 세금을 퍼붓는 그저 그런 금융, 세제지원뿐이거나 그냥 대기업 때려 중소기업 보호하자다.

정권마다 요란한 중소기업 레토릭

한 가지만 묻자. 이번에 늘린 시설자금 5조3,000억원을 포함해서 보조금에 가까운 정책자금을 받는 중소기업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고작 6%다.

정부와 정치권은 관주도로 기업을 육성할 수 있다는 건방진 두뇌와 허황된 레토릭(수사학)부터 버려야 한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정책자금 덕에 글로벌 기업이 됐는가. 강한 기업이 되는 건 기업 자신의 노력과 기업하기 좋은 환경(기업인프라)에 달려 있다.


또 하나 묻자. 왜 중소기업이 어려운지 정부와 청와대는 정작 알고 있는가. 대기업이 괴롭혀서 그렇다는, 그런 유치한 선동은 집어치우시라. 미시만 보지 말고 거시를 봐야 답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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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소기업 수 비율은 99.9%이지만 수출 비중은 겨우 18.7%다. 내수기업이란 말이다. 또 제조 중소기업의 납품 매출에서 대기업 비중은 44.5%에 그친다. 절반 이상이 대기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독립 기업이다.

대기업만 때려 잡으면 중소기업이 사는 줄 아는 무식한 정치인들은 그만 그 입을 닫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대기업 1차 협력업체는 현금결제로 형편이 좋다. 문제는 이들 1차 협력업체인 중견기업들이 2차ㆍ3차 협력기업인 중소기업들에 가혹하게 군다는 점이다. 이를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알면서도 정치권이 가만히 있는 정황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수출은 대기업이 끌고 간다. 이를 좇아 협력 중견ㆍ중소기업들이 먹고산다. 이에 비해 시장이 갈수록 위축되는 내수 중소기업(자영업자 포함)들은 점점 힘들다. 해외시장을 개척하든지, 피 튀기는 내수 경쟁에서 살아남든지 양자택일이다.

내수시장은 왜 이 모양인가. 외환위기 이후 이헌재ㆍ김진표 전 경제부총리 등 망국적 모피아들이 주도해 부동산 거품을 조장하고 비정규직 양산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남발한 탓이다. 소득구조가 뒤틀려 아무리 성장을 해도 중산층은 줄어들고 빈곤층만 늘어난 게 지난 10여년의 자화상이다.

중기 살리려면 국민 지갑부터 채워라

이제라도 청와대와 정부는 성장 운운하며 억지로 경기를 띄울 꼼수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대신 중소기업 근로자를 포함한 국민들의 구매력 확대(소득 증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러려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체제로 개편하는 등 1차 분배인 소득 구조부터 전면 수술해야 한다.

물론 노사정 대타협 등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지난한 일이다. 하지만 정공법인 이것밖에 국민이 더불어 살 길은 보이지 않는다. 동시에 영리병원 등 서비스업 규제와 기득권집단의 저항을 혁파해 외국인 소비를 한반도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내수가 산다.

내수가 살면 중소기업이 산다. 지금 당장 국민의 빈곤화를 막는 시스템 개조를 외면한다면 미사여구로 치장한 작금의 중소기업 레토릭은 거짓에 가득 찬 궤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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