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노동시장 개혁의 열쇠-뉴프런티어십] <1> 임금체계 개편 발등의 불

호봉제가 되레 고용불안 부채질… 생산성 반영한 성과급 늘려야

연공 따른 임금차 세계 최고… 고임금 직원 구조조정 늘고 신규채용 외면 악순환 불러

기업·근로자 상생 하려면 직무·능력·성과 중심으로 세분화된 임금시스템 필요


김대환(오른쪽 여섯번째) 노사정위원장을 비롯한 노사정 관계자들이 지난해 8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권욱기자

KT는 지난해 4월 8,000명에 대해 희망퇴직을 받은 데 이어 연말에도 임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유무선통신 가입자가 정체상태인 가운데 인력구조상 고령 근로자가 많아 인건비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장기불황에다 인건비 인상에 대한 부담으로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소리 소문 없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평균 정년은 57세지만 실제로 근로자들이 퇴직하는 연령은 53세에 불과하다. 사실상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쓸쓸히 회사를 떠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내년부터 법적으로 정년이 60세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정년을 꽉 채우거나 퇴직연령이 지금보다 높아지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고용불안만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들이 법에 정해진 연령까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생산성과 관계없이 생애 동안 임금이 상승하는 연공서열식 호봉제다. 과도한 연공형 임금 체계는 생산성과 보상의 미스매치로 고임금 중장년 근로자의 조기 퇴출을 불러오고 기업들은 비용 부담으로 신규채용을 꺼리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아무런 준비 없이 정년만 연장되면 신규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취업절벽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지만 연세대 교수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가 평균 25%나 늘어나는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우리 노동시장에서 호봉제는 일종의 DNA와도 같이 오랜 기간 자리를 잡았다. 호봉제는 과거 산업화시대에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근로자들을 잡기 위한 인사관리 방안의 하나로 도입됐다. 인력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 기업 규모별 임금 체계를 보면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79.6%가 호봉제를 적용하고 있다. 사업장 10곳 가운데 8곳이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인 것이다. 이에 반해 직능급(48.4%)과 직무급(41.1%)을 도입한 사업장은 절반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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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급 임금 체계는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효과적이었지만 현재와 같은 저성장기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경직적인 노동시장을 만들어 기업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임금의 연공성 국제비교' 조사에 따르면 생산직 근로자의 근속연수별 임금격차(초임 대비 30년 이상 임금지수)는 우리나라가 3.3배로 독일(1.97배)이나 프랑스(1.34배)보다 월등히 높다. 연공에 따른 임금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인 셈이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을 비교해도 3배 정도 차이가 난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는 "임금 체계 문제는 다가오는 정년 연장뿐만 아니라 가장 큰 이슈인 비정규직 문제 등을 선순환구조로 풀기 위한 기본적인 출발점"이라며 "기업 경쟁력과 체질을 강화시켜 선제적으로 고용안정까지 달성할 수 있는 대응책이 하루빨리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공급 위주에서 직무·능력·성과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임금 체계를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데다 개별 기업과 근로자마다 생각이 다 달라서 단번에 바꿔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노동계에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2013년 5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일자리협약 체결 당시 지나친 연공성을 완화하면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임금 체계를 합리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지만 7개월이 넘도록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노용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임금은 자기 관성이 강해서 예전에 비해 임금 등급을 좀 더 세분화하는 의미 이상으로 단기간에 개편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정부는 우선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임금 체계 개편을 확대할 방침이다. 올해 임금피크제를 포함해 직무성과 위주로 임금 체계를 개편하는 내용을 경영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직종·직급별 인사·임금 시스템도 마련한다. 연령이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직무 성격을 바꿔준다거나 해당 직무에서 임금을 새로 설정하는 등 직무성과가 임금에 반영되도록 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직마다 목표가 다를 수밖에 없어 공통의 임금 체계를 만들기는 힘들기 때문에 보다 정교한 체계가 요구될 수밖에 없다. 입사 후 10년 정도는 생산성이 꾸준히 올라가게 되니 연공급을 바탕으로 임금을 주고 그 이후에는 직무급과 성과급을 강화하는 등 복합적인 임금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노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우리는 형식적으로는 모두가 최고경영자(CEO)까지 올라가는 길이 열려 있지만 개개인의 능력은 제각각"이라며 "생산성과 임금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임금 체계와 직제를 바꿔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황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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