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신출내기 서혜숙 변호사(41ㆍ연수원 28기)는 선배 최원현 변호사(현 KCL 대표변호사)와 함께 참여했던 'OB맥주 사건'에서 공정거래법을 처음 다뤘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맥주값 담합'이라고 판단했던 사건이 차근차근 검토해 준비한 변론에 결론이 뒤집히고 거액의 과징금이 취소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제 막 법조인으로서 첫 발을 내디딘 신참은 공정거래법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졌다. 그로부터 만 12년. 공정거래 분야 전문 변호사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서 변호사는 "그때 승소하지 않았다면 다른 분야를 택했을지도 모른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 공정위가 음원 서비스사업자 6개사의 가격 담합 사건을 적발해 128억원의 과징금을 물린 사건에서 서 변호사는 12년 전 느꼈던 희열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애초에 공정위가 담합에 가담한 회사로 지목한 곳은 소리바다를 포함해 7개사였다. 그러나 소리바다의 의뢰를 받고 사건을 살펴보던 그는 사건의 결론을 바꿔놓을 수 있는 단서를 발견했다. 그는 "소리바다는 음원을 최종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위치이자 동시에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들로부터 콘텐츠를 제공받는 입장이었다"며 "당시 소리바다는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서 담합 요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특정 사업자가 강요에 못 이겨 부당공동행위에 참여한 상황이 인정되더라도 시정명령은 동일하게 나가고 과징금 액수만 줄어든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공정위가 조사단계에서 과징금을 부과해야 할 대상으로 소리바다를 지목했다가 마지막 의결 단계에서 모두 취소됐다. 담합혐의는 인정할 수 있지만 '을'의 위치에 있었던 소리바다에게 과징금을 매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서 변호사의 주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공정위가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은 아마도 '타사의 수직적 강요가 사안의 본질'이라는 주장이 인정된 덕분인 것 같다"라며 뿌듯해했다. 이처럼 공정위가 조사단계에서 혐의가 밝혀진 이후 전체 위원들이 판단하는 의결 단계에서 결과가 뒤집어지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은 백여 년간 관련 분야가 크게 성장한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 비해 역사가 짧다.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위가 올해 출범 30주년에 그칠 정도다. 기업들이 수백억 원 대의 과징금을 받은 후에야 '공정거래법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서 변호사를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좋은 영업실적을 내기 위해서 비밀 모임에 참석한 대리∙사원들이 공정위 조사에 걸려 회사와 애사심이 강한 직원이 함께 처벌받기도 한다"며 "기업에 떨어지는 수백억 원 대의 과징금 철퇴, 그 금액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탈법적 행위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KCL의 공정거래팀은 김용직 대표 변호사(56ㆍ12기)를 비롯한 7명의 변호사와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2006년부터 KCL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대형 상임고문(59) 등 고문역 2명으로 구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