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과학계에 '신(新) 아르고원정대'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그리스신화에서 이아손(Jason)은 황금양의 털가죽을 구하러 콜키스 땅으로 가기 위해 헤라클레스, 일라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등 50명의 영웅들을 끌오 모아 '아르고(Argo)'호라는 이름의 배를 타고 원정길에 올랐다. 이 영웅들을 '아르고 원정대'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어 전문 과학기술 인력의 해외취업 현상을 '신 아르고 원정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과 세계은행(world bank) 등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에서도 신 아르고 원정대가 가장 많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해외 우수 과기 인재가 한국으로 유입되기 보다는 고급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두뇌유출(brain drain)'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과학계 인사들은 국가 연구개발(R&D) 10조원 시대의 풍요 속에서도 정작 세계적 연구성과를 낼 수 있는 해외 유수 인재의 확보는 오히려 해가 거듭될수록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며, 이들을 흡수할 수 있는 '블랙홀'과 같은 법ㆍ제도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만 인재유출 가속화=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과학단체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은 최근 산하 과학기술정책위원회를 통해 최근 '21C 선진한국을 위한 창조적 과학기술 정책' 보고서에서 두뇌유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이 보고서는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수립에 필요한 중요한 참고자료로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과총 정책연구소, 연구개발인력교육원 등 유관기관과 국내 주요 대학 교수들이 대거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IMD가 집계하는 두뇌유출 지수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급 두뇌가 빠져나가는 국가로 꼽혔다. 1995년 7.53점(10점은 인재의 완전 유입, 0점은 완전 유출)으로 세계 4위의 두뇌유입 국가였으나 2006년에는 4.91점으로 58개국 가운데 38위로 급락했다. 이처럼 국내 고급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해외 인재들은 한국을 외면하는 인재 공동화 현상으로 국가 경쟁력에 심각한 손상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 두뇌유출입의 변동성이 지난 11년 새 비교대상 국가 중에서도 가장 크게 확대됐다는 점 역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1995-2006년 간 한국의 두뇌유출지수 변동폭은 –2.62를 기록, 조사대상 국가 중 가장 큰 변동성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 0.60으로 우리보다 양호했다. 인재 유출입의 균형이 크게 깨져 국내 유입 흐름에 불확실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세계은행이 조사한 OECD 국가들의 두뇌유입 비율을 인용, 보고서는 국내 고급인력 수급의 문제점을 대조적으로 보여줬다. 호주(10.0%→11.4%), 캐나다(8.3%→10.7%), 룩셈부르크(2.1%→7.3%), 미국(3.6→5.4%), 스웨덴(1.5%→2.3%) 등 주요 회원국들이 공통적으로 11년 새 두뇌유입 비율이 꾸준히 상승했지만 유독 한국만이 –1.3%에서 –1.4%로 0.1%포인트 감소했다. ◇국내유입 '블랙홀' 만들어라=보고서는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두뇌유출(brain drain)'에서 '두뇌순환(brain circulation)'으로 바꾸는 법ㆍ제도 인프라의 혁신을 새 정부에 촉구했다. 두뇌유출의 또 다른 표현인 해외취업이 개인의 기술과 자질 향상에 보탬이 되고 한국사회 전반에 인적자본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보고서는 "인재 해외진출이 긍정적 효과를 낳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이들이 국내에서 밀접한 상호작용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며 "무엇보다 이들이 향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단적인 예가 바로 이웃 국가인 싱가포르. 보고서는 "해외 우수인력을 경제 성장의 지렛대로 활용해온 싱가포르는 국제 두뇌자본 유치를 위해 인력모집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싱가포르를 글로벌 지식도시로 조명하는 홍보 프로그램을 개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 산하 공공서비스위원회(PSC)를 통해 싱가포르에 귀국한 해외 장학생에게 취업을 알선하고 이 중 우수한 인력을 선별해 경력관리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는 것. 과총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노동력의 이동성과 해외 정주의 편리함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 유출 인력을 귀환시키는 정책이 적용될 여지도 함께 줄고 있다"며 "더 이상 해외 유학생들의 애국심에 호소해 인력 유입을 유도하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해외 인재 유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이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국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국내에서 활동 중인 한 저명한 과학계 인사는 "자녀교육 등을 감안하면 미국 국적을 포기하는 게 쉽지 않다. 개인입장에서는 국적포기는 큰 결단인데, 유인책도 부족하다"며 "또 외국 국적의 한인 과학자가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차단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해외 우수 인재 유입에 뜻이 있다면 그 첫 출발은 외국 국적의 과기인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이중국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법ㆍ제도적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