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Culture & Life] 조유식 인터넷서점 알라딘 사장

깊이 있는 메시지 전해주는 책, 여전히 가장 위대한 매체죠

크레마 샤인

출판시장 어렵다고 하지만 역발상에 성공 열쇠 있어 젊은세대 과감히 창업 도전을

성숙기 도달한 인터넷서점 온라인·모바일 결합이 새 기회


'유통괴물' 아마존 한국 진출 시장 규모 커지는 효과도 기대 효율성 높여 대처해 나갈 것

1998년 사업 아이템을 찾아 미국에 건너간 지 1주일도 안 돼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선 e메일이 이미 누구나 편하게 주고받는 수준으로 일상화돼 있었던 것. 당시 한국에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계정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는 즈음이었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정보화 시대가 온다는 게 느껴졌죠."

또 대형서점 체인인 '반스&노블'에서 다시 한 번 놀랐다. 규모 자체야 당시 국내 대형서점보다 작았지만 보다 다양한 책 종류와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인테리어가 부러웠다. 사업적 조건이 다르다 해도 한국에 태어난 게 억울할 정도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인터넷에서 더 좋은 서점을 만들자고.

그리고 몇 번의 주저 끝에 6개월 후 인터넷서점을 설립한다. 설립 15년 만에 연매출 2,000억원의 인터넷서점으로 성장한 알라딘의 조유식(50·사진) 사장의 이야기다.

"'세상의 끝'은 영화나 다른 매체가 아닌 책 속에 있습니다. 사상도 사랑도 죽음도 끝까지 밀고 나간, 가장 진화한 형태입니다. 실제에서 좀처럼 맞닥뜨리기 힘든 극한상황과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거죠. 과거처럼 독점체제는 아니지만 책은 여전히 가장 강력하고 가장 깊이 있게 가장 넓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체입니다. 책을 많이 읽으세요. 텍스트는 여전히 위대합니다."

조 사장은 22일 서울 서소문로 알라딘 본사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끝(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는 요즘 출판업계에서 30~40대 경영자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며 아쉬워했다. "매년 출판사 순위를 보면 상위 20위권까지 늘 같습니다. 게다가 10년 안 된 신생 출판사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역발상 속에서 성공 열쇠가 나옵니다. 외국어와 다양한 스펙을 갖춘 젊은 세대가 출판업계에 뛰어들면 10~20년 내에 위대한 출판사가 나올 겁니다."

이제는 연매출 2,000억원대 기업의 경영자로 더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에서 다른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지난 1999년 밝혀진 민족민주혁명당 사건, 소위 '민혁당 사건'이다. 1991년 '주체사상의 대부'이자 '강철서신'을 작성한 김영환과 함께 반잠수정을 타고 방북했을 만큼 핵심인물이었던 그는 1999년 함께 체포되고 함께 전향했다.

그런 그에게 어찌 보면 사업가란 의외다. 게다가 1999년 인터넷서점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 미국에는 현재 세계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아마존이, 한국에도 국내 최대인 예스24나 인터파크·교보문고 등이 인터넷서점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 사장은 자신이 있었다. 겨우 책 이름과 출판사, 연도 정도를 갖춘 경쟁업체의 도서검색 데이터베이스(DB)를 보며 더 좋은 인터넷서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정부나 삼성그룹도 이 사업에 손을 대던 시절이라 성공 가능성은 불투명했어요. 미국에서도 당시 대기업도 있었고 원천기술도 개발돼 있었지만 구슬을 꿰지 못했어요. MS나 구글이 의욕과 열정으로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창업은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확실히 사업은 녹록하지 않았다. 기존 업체들과의 경쟁이 쉽지 않았고 선발업체들도 하나둘 사라져갔다. 후발업체인데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한 알라딘은 설립 6년 정도 지나니 대외 채무가 60억원까지 불어났다. 쉽게 생각할 만한 숫자가 아니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빚이 쌓였을 즈음 정말 다행스럽게도 수익이 흑자로 전환됐어요. 그 후로는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가며 고용도 늘려갔어요. 얼마 전 기관 발표에 따르면 재벌 계열사나 납품업체가 아니면서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인 기업이 20곳 정도라고 들었어요.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지만 출판시장 자체가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인터넷서점 업계도 고점을 찍었다는 지적이 많다. 유사한 서비스업체가 늘어나는데 수요가 줄면 이익이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세계적으로 봐도 국내 인터넷서점의 시장 점유율은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시장이 성숙기에 도달해 과거만큼 성장하기도 어렵죠. 새로운 기회는 온라인과 모바일을 결합한 서비스에 있습니다."

심지어 세계적인 '유통괴물' 아마존도 한국에 진출한다. 아마존은 지난해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이달 초 염동훈 전 구글코리아 사장을 대표로 영입하며 한국시장에서 본격적인 행보를 예고하고 있다. 그는 긍정적인 면을 먼저 봤다. 전자책 종수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그간 한국에 잘 소개되지 않았던 저작물의 유통도 활성화되지 않겠냐는 것. 쉽게 말해 파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물론 경영자로서 이 상황을 '죽을 맛'이라고 표현했다. 심지어 대책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지켜보고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 중 하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않겠습니까.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됩니다. 전세계 모든 기업이 아마존에 대해 힘들어합니다. 기술적 격차보다 인원 차이가 크지만 효율성을 높여 극복할 겁니다."


해마다 매출이 10% 이상 감소하는 업체가 대부분일 정도로 끝없는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업계에서, 특히 중소업체는 생존 자체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이를 보완하기 위한 도서정가제는 출판·유통 업종에 따라, 또 출판사 규모에 따라 각각의 이해가 엇갈리며 합의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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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조 사장은 "도서정가제가 책의 가격경쟁 일변도를 벗어나게 해주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일부에서 지적되는 세트할인(구간과 신간을 묶어 전체 가격을 낮추는 상품)보다는 신용카드사의 결제를 통한 우회 할인에 대해 오히려 더 우려했다. 어차피 뻔히 눈에 보이는 세트할인보다 눈에 띄지 않는 카드 할인이 제재받지 않아 더 위협적이라는 얘기다.

인터뷰를 마치며 출판유통계 15년 차 경영자인 그에게 '내 인생의 책'을 물었다. 조 사장은 대뜸 중학교 시절 읽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꼽았다. "중3 때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정신적 충격이 컸습니다.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 비루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의 정신을 스스로 세우겠다는 주인공의 노력이 어린 중학생을 열심히 살게 하는 계기가 됐죠."

하지만 지금은 '논어'가 좋다고 했다. 처음 추천받은 것은 1986년 안양교도소에서 만난 이돈명 변호사에게서였다. "복역 중 아침 달리기 시간에 당시 '인권변호사의 대부'로 불리던 선생이 두 가지를 조언하셨습니다. 감기 조심할 것, 그리고 논어를 반드시 읽을 것. 당시에는 '고리타분하게 웬 논어?'라며 그냥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이후 여의도에서 만난 이광재 보좌관에게서 다시 한 번 추천 받고 제대로 읽었다. 그는 "멋지고 아름다운 인본주의 세상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특히 '수기안인(修己安人)'이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 내 안에서 시작하고, 사람들에게 베풀려면 편안하게 해줘라'라는. 결국 현재 제 인생관의 바탕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1990년대 들어 6년 가까이 동양철학에 빠져 지냈고 결국 '정도전을 위한 변명'이라는 책까지 냈다.

He is …

△1964년 경남 진해 △1983년 배문고 △1994년 서울대 정치학과 △1998년 인터넷서점 알라딘 설립 △2013년 온라인 회원 500만, 일일 방문자 25만 돌파

■ 부진 못 벗어나는 전자책 해법은

"콘텐츠·단말기 늘리고 가격 낮추면 시장 점유율 20% 가능"

새로운 출판시장을 열어줄 것으로 기대됐던 전자책은 첫선을 보인지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전체 시장의 2~3%로 여전히 존재감이 없다. 통상 3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출판시장에서 전자책 비중은 700억원 수준.

하지만 조유식 대표는 전자책 시장의 부진에 대해 세 가지 조건이 미국과 동일한 수준으로 충족된다면 전체 출판시장에서 점유율이 20% 이상을 차지하는 것도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턱없이 부족한 전자책 종수다. 이것이 해결되면 현재 미국의 반토막 수준인 전체 책 대비 전자책의 비율이 우선 10%를 넘길 수 있다고 봤다. 볼 만한 콘텐츠가 적어 독자들이 외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다음은 독자들이 상대적으로 비싸다고 느끼는 가격. 현재 업계 상황에서 전자책의 제작비용을 따로 산정하기 어렵지만 역시 미국 수준이 된다면 15%도 가능하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미국에서 킨들과 아이패드가 그렇듯이 전용 단말기와 태블릿PC의 보급률이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이 모이면 시장점유율 20%를 충분히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책의 규격 통일이나 플랫폼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잘라 말했다. 일반적으로 전자책 이용자들은 콘텐츠 이용에 있어 단말기 간 호환이 되지 않는 점과 플랫폼 업체가 없어지면 보유 콘텐츠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불만요소로 꼽는다.

조 사장은 "종이책은 한 번 사면 평생 독자들에게 남고 음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자책은 한 업체에서 구매한 콘텐츠를 다른 업체 단말기에서 볼 수 없고 심지어 업체가 도산하면 아예 날려버린다는 불안감까지 느낀다. 하지만 이는 전자책 비중이 전체 출판시장의 30% 수준인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있는데 굳이 전자책 전용단말기가 필요하냐는 지적에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지난해 10월까지 4년간 전자책업체 한국이퍼브 대표를 맡아 전용단말기 '크레마' 시리즈 출시를 주도해왔다.

"전자책 전용단말기는 독서에 최적화된 기기로 한국에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시장규모가 작다고 없어져서는 안됩니다. 태블릿PC가 강세를 보인다지만 이는 다양한 기능을 갖췄기 때문일 뿐 전용단말기에 대한 수요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진=이호재기자


이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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