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원금비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의 지급구조와 관련한 모범 규준을 만들기로 결정한 데 대해 파생상품 관련 전문가들은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미 ELS로 인한 손실이 커지고 있어 진작에 조치를 했어야 된다"며 "특히 종목형 ELS는 투자위험이 큰 만큼 이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종목형 ELS는 아예 발행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목형 ELS의 위험성은 최근 현대차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있는 ELS를 통해 증명되고 있다. 5일 서울경제신문이 금융정보업체 에프앤파이브에 의뢰해 현대차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중 상환되지 않은 195개의 녹인 조건을 따져보니 현대차를 기초자산으로 하고 있는 ELS 18개 상품이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
전날 현대차 ELS는 삼성증권이 발행한 4개(삼성증권 ELS 9152호·9150호·9205호·9204호)와 한국투자증권이 발행한 2개(아임유 ELS 4054호·3728호), KDB대우증권이 발행한 1개(대우증권 ELS 10417호) 상품이 녹인 구간에 진입했다. 이날 현대차 주가가 추가로 2.58% 빠져 18개 상품이 무더기로 녹인 구간에 진입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5일 종가(15만1,000원)를 기준으로 10%만 주가가 더 떨어지면 113개 ELS가 녹인 구간에 진입한다. 녹인 구간에 들어서면 해당 투자자는 약속된 이익을 받지 못하고 손실 가능성이 생긴다. 113개 ELS의 발행규모는 698억원 수준이며 전날과 이날 이틀간 녹인 구간에 진입한 25개 ELS와 합치면 800억원 규모다. 이날 추가로 녹인 구간에 진입한 ELS는 삼성증권이 발행한 ELS 7개(9086호·9178호·9085호·9049호·9180호·9255호·9277호), SK증권이 발행한 ELS 3개(1111호·1128호·1146호), 하이투자증권 2개(307호·356호), 한국투자증권이 1개(4156호), 한화투자증권 1개(2257호), 하나대투증권 1개 (3644호), HMC투자증권 2개(1186호·1185호)다.
엔저의 영향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현대차의 주가 전망은 밝지 않다. ELS 녹인 물량이 발생하면 다시 현대차의 주가를 흔드는 악순환도 예상된다. 류연화 아이엠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전 부지를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낙찰받은 이후에도 엔화 약세, 해외 소매판매 마이너스 전환, 해외 경쟁 심화에 따른 비용 증가, 신차의 부진, 연비 문제, 통상임금 문제 등 악재가 연이어 터지고 있어 실적이나 주가가 언제 회복될지 장담할 수 없다"며 "ELS 녹인 물량이 발생하면서 수급적으로도 불리해지는 등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현대차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를 여전히 발행하고 있다. 전날 HMC투자증권은 최고 연 10%의 수익 지급을 내걸고 현대차와 기아차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3년 만기 원금 비보장형 ELS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현대차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발행된 종목형 ELS는 5건이다. 현대차 외에도 주가가 크게 떨어지는 삼성전자 역시 지난달 22건이 발행됐다. 증권사들은 공격적 성향을 지닌 투자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종목형 ELS의 발행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1년 정기예금 금리가 2% 미만으로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고 ELS 외에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고 느낀 투자자들이 종목형 ELS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 10% 이상의 수익을 제공하는 상품이 종목형 ELS 외엔 별로 없어 위험 자산을 찾는 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ELS의 구조상 주가가 크게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면 상환조건은 좋아진 측면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ELS를 투자하기에는 좋은 시점"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파생상품 전문가들은 증권사들의 이 같은 논리에 대해 투자자들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 파생상품 전문가는 "현대중공업·OCI 등도 3년 전에는 주가가 지금처럼 바닥으로 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며 "내일 한 종목의 주가가 어떻게 될지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3년 뒤의 주가가 녹인 구간으로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식으로 투자 권유를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