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이 물가를 국정의 최우선에 두겠다면서 물가관리책임제를 전면에 내세우자 기업과 한나라당 등 정치권은 물론 정책을 실행해야 할 관료사회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고 있다.
이날 과천청사에서 만난 중앙정부 부처의 한 공무원은 "대통령도 취임 초반부터 물가를 잡겠다고 나섰다가 실패했는데 이를 개별 공무원에게 맡긴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결국 실무자들에게만 피해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관계부처에 따르면 주요 부처의 물가 관련 공무원들은 대통령의 물가관리실명제가 나온 다음날 대책의 비현실성 등에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경제관료들은 현정부가 출범 직후인 지난 2008년 52개 품목, 이른바 'MB물가'를 꼽아 집중 관리했으나 일부 주요 품목들의 경우 최대 50% 이상 오르고 배춧값 파동 등도 피해가지 못한 채 실패한 바 있다. 기름값 역시 국제유가 급등으로 현정부 초기인 2008년보다 26%나 올랐다. 심지어 최근에는 정부가 앞장서 기름값을 잡겠다며 '알뜰주유소'까지 등장시켰다.
한마디로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정부가 나름대로 방법을 총동원한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에 달했고 올해도 3% 넘게 치솟을 것으로 전망돼 물가 잡기가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고 일정 상한선을 설정하고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해당 공무원을 문책하는 게 지나친 일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의 일방통행식 물가관리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내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장급 간부는 "상황이 급해도 시장경제의 룰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무리한 통제가 계속될 경우 연말로 가면 눌러놓은 가격들이 다시 오를 수 있으며 이 경우 '관치물가'라는 오명은 물론이고 더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물가관리 실명제가 나온 직후 정책 자체에 대한 불만과 함께 정책이 실명제를 한다고 해서 효과를 본다는 보장도 없다고 스스로 토로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지식경제부는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 발전소 책임운영제를 시행했다. 발전설비 운영 실명제를 통해 발전설비의 고장을 일으킨 직원은 과감히 문책했다. 고장률은 줄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늦더위에 따른 수요예측에 실패로 9ㆍ15정전대란을 맞아야만 했다. 실명제를 하더라도 외생변수가 많은 탓에 제대로 대처하기가 힘들었던 셈이다.
물가도 마찬가지다. 가격이라는 것이 원래 공급과 수요 간의 수급을 기본으로 환율과 금리 등 다양한 변수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어 대통령 지시에 따라 무작정 '상한선'을 씌우고 이를 지키지 못할 때 문책을 한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농축수산물 등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을 관리하는 농림수산식품부는 더욱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농식품부의 한 공무원은 "배추 값의 경우 일단 올해 상승률을 30% 정도로 잡아놓기는 했는데 날씨 등 작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물가를 잡는 데 최선을 다하겠지만 불가피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문책을 당한다는 것은 억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 담당부처인 기획재정부의 관계자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올해 물가를 목표치(3% 초반) 수준으로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미시적인 차원으로 들어가면 희비가 갈릴 수밖에 없다"며 "물가품목마다 책임자를 두게 되면 심리적으로 담당자들의 부담은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관가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대통령의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를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정두언 의원은 지난 3일 트위터를 통해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는 해괴한 말"이라며 정면으로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는 그러면서 "환율ㆍ이자 등 수출위주의 거시정책은 물가를 부추기면서 미시적 규제로 물가를 잡는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원희룡 의원도 이날 "물가관리 책임실명제는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책임전가이자 관에서 물가를 직접 찍어 누를 수 있다는 권위주의"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