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국회는 아노미 상태

김창익 기자 <정치부>

지난 27일 증권집단소송법 관련, 당정 간담회 직후 홍재형 열린우리당 정책위원장은 ‘법사위 의원들이 이날 결정에 동조할 것 같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마치 신문 헤드라인 뽑듯이 말했다. 이날 당정은 과거분식에 대해 이 법의 적용을 2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으나 법사위 의원들은 줄곧 유예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간담회 도중 나왔던 우윤근 의원(법사위 소속)은 “회계 기술상의 문제를 들어 반대하는 의견이 많다”고 비공개 회의장의 분위기를 전했었다. 우 의원은 “재경위 소속인 강봉균 의원도, 박영선 의원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법사위 소속인 최재천 의원의 보좌관도 간담회 이후 “(최 의원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했다. 이에 비춰 홍 위원장은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지도부 결정에 결국 따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법사위 소속 의원들과의 합의를 남겨두기는 했지만”이라고 말했던 홍 위원장은 간담회 이후부터 이날 저녁 집단소송법을 다루는 법사위 제1소위가 열리기 전까지 ‘7~8시간’ 동안 법사위 소속 의원들과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국회 일정상 집단소송법 부칙 개정안의 연내 통과가 무리 없이 이뤄지려면 이날 소위를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홍 위원장은 간담회 이후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권위가 예전 같지는 않나 보다. 이날 우리당 소속 제1소위 의원들은 유예에 대한 판단을 결국 유보했다. 국회 의사 일정상 이날의 ‘유보’는 곧 ‘연내 처리 불가’와 동의어였다. 다만 똑부러지게 반대 입장을 표시하지 않은 게 지도부의 결정에 다소 부담을 느낀 결과로 보여졌다. 28일 오후 최재천 의원은 이를 묻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간담회 결과는 법사위와) 합의가 덜 된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며 “반대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윤근 의원도 “(법사위 전체회의를) 하루 남겨놓고 일방적으로 간담회를 열어 갖고는 뭘 어쩌자는 거냐”고 소리를 높였다. 소위 ‘보스 정치’ ‘카리스마 정치’의 시대는 갔지만 그렇다고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도 정착한 느낌은 없다. 우리 국회는 여전히 ‘아노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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