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남성 동성애자 5명이 '칼리니폐렴'에 걸렸다. 칼리니폐렴은 면역력이 전혀 없는 노인이 걸리는 희귀한 병으로 젊은이들이 걸렸다는 사실은 특이한 일이었다. 환자들의 혈액을 검사하자 놀랍게도 항체를 만드는 세포가 전혀 없었다.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가 최초로 발견된 것이다. 발견된 지 30년이 채 안됐지만 에이즈는 가장 유명한 질병이 됐다. 에이즈는 한마디로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돼 면역력을 잃어버리는 질병. 면역체계는 매우 다양한 면역세포와 항체, 단백질의 협주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 CD4 T세포(이하 CD4)라는 면역세포는 바이러스의 정보를 다른 세포들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HIV는 대범하게도 바이러스를 잡는 CD4를 공격한다. HIV에 감염되면 두통, 발열, 근육통을 3주 정도 앓다 회복된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침투한 HIV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퇴치하지는 못하며 일부 HIV는 몸에 남는다. 이때부터 HIV는 8~10년에 걸쳐 서서히 인체를 잠식하기 시작한다. 면역체계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다. 에이즈 환자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HIV 보균자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다 갑자기 면역체계와 HIV의 팽팽했던 줄다리기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때가 온다. CD4가 혈액 1mL에 200개 이하로 떨어지는 순간이다. HIV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며, 반대로 면역세포 수는 급격히 줄어든다. 이때부터가 후천적으로 면역이 없어진 상태, 즉 에이즈다. 일단 에이즈가 시작되면 대부분 1~2년 내에 사망한다. 어떻게 에이즈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감염을 막는 것이다. HIV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정액, 질액이나 혈액에 존재한다. 따라서 성행위나 수혈을 통해서만 전염된다. 또 에이즈 치료약이 매우 빠르게 개발되고 있기 때문에 이미 HIV에 감염된 사람에게도 희망은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에이즈는 인류가 자초한 질병이라는 사실이다. HIV의 출현 경로를 연구한 많은 과학자들은 인류가 아프리카에 조용히 숨겨진 밀림을 들쑤셨기 때문에 HIV가 세상에 나왔다고 말한다. 무분별한 개발은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