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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겠지만 이곳에는 '개인사업자'가 많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직이라는 위계질서에 속하기보다는 자신의 이름 세 글자만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흔하고 이들이 주류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영화배우 000, 가수 ***, 화가 ### 등이 그런 식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공식적인 호칭이야 어떻게라도 쓰면 되겠지만 얼굴을 보고 직접 이름을 부를 때는 문제가 생긴다.
영화업계에 처음 출입했을 때다. 모 배우를 처음 만났는데 이 사람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망설여졌다. 주위에 물어봤다. "어떻게 불러야 돼요? 00배우? 00씨? 00형? 00님? 아니면 00야?"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이에 맞게 '00씨'가 가장 일반적이지만 친할 때는 형·선배 등 다양한 호칭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배우 박중훈은 감독이 된 후에 만났다. 자신이 연출한 영화 '톱스타' 행사장에서다. 그에 대한 호칭은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박 감독님'이다. 기자보다 나이도 위니 '님'자를 붙이는 것도 자연스럽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언어감각으로는 이름 뒤에는 감독이나 부장·대표·차장 등 직급이 들어가야 어울린다. 손아랫사람이라도 아주 친하지 않으면 이름만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직급은 조직 내에서 개인의 위치를 정해주는 호칭이다. 박 감독이라고 했을 때는 어떤 특정한 조직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연출팀을 말 그대로 '감독'하는 책임과 의무, 그리고 권리가 생긴다. 반면 이런 직급이 없는 사람은 그런 부담이 없다. 자신만 잘하면 된다. 박 감독도 배우 때는 그냥 '박중훈'이라고 불리며 자신의 연기 역할만 충실하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되고 나서는 '감독님'이라는 좋은 호칭이 생겼다. 물론 그만큼 책임은 커졌다. 같은 정도의 권리가 생기기도 했다.
호칭에 대해서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이름과 실질이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불리는지, 그럴 자격과 권리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세월호 참사에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선장이 말 그대로 배의 최고책임자로서 행동했다면 이렇게 대참사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장'답지 않는 선장이 지금도 모든 뉴스상에서 여전히 '선장'으로 불리면서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모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맡은 호칭에 걸맞은 행동을 하는 것이 사회의 기본질서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핵심이다. 사장은 사장답게, 부장은 부장답게, 과장은 과장답게 말이다. /최수문 문화레저부 차장 chs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