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5월 19일] 무산된 공천실험

6ㆍ2 지방선거는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가 추가되면서 1인8표제가 도입되고 여성공천 의무제가 실시되는 등 이전과 다른 양상이 두드러지지만 무엇보다도 관심을 끈 것은 공천배심원제였다. 여야가 정당공천제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도입한 공천배심원제는 이번 선거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민주당이 내놓은 시민공천배심원제는 정당의 공천권을 사실상 일반 시민이 행사하기 때문에 가히 '공천혁명'이라고 할 만했다. 이 제도는 재판과정에 도입된 국민배심원제를 정당의 공천에 접목한 것으로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적 접근방식이다. 선거전략 목적으로만 활용 탓 시민사회의 각계각층을 망라한 전문배심원(50%)과 지역 유권자 중에서 무작위 추출한 현지배심원(50%)들이 선거구별 경선대회장에서 정견발표와 토론과정을 지켜본 뒤 투표로 후보자를 결정하게 된다. 민주당은 올 초부터 이 제도가 중앙당이 낙점하는 하향식 밀실공천이나 상향식 국민참여경선제의 문제점으로 드러난 동원경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한나라당도 지난해부터 공천제도 쇄신안을 마련해 원칙적으로 선거인단 투표나 여론조사를 통한 경선으로 후보를 선정하겠다고 천명했다. 전략공천이나 비례대표의 경우 국민공천배심원제를 도입해 단수후보를 검증하고 견제하는 장치를 마련했다며 클린공천ㆍ개혁공천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학계, 시민단체, 법조계 인사 등 30명을 국민공천배심원으로 위촉했다. 하지만 여야의 이 같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이와 무관하게 돌아갔다. 공천과정 초기부터 유권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태가 속출했다. 현직 군수가 공천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거액을 전달하려다 구속된 사건은 돈 공천의 실태를 여실히 드러냈다. 공천이 확정된 또 다른 현직 군수는 비리가 드러나자 여권을 위조해 해외로 도주하려다 체포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민주당의 시민공천배심원제도 실상은 속 빈 강정이었다. 전국의 광역ㆍ기초단체장 선거구 가운데 이 제도를 실시한 곳은 고작 10곳에 불과했다. 그나마 배심원의 결정으로 후보를 결정한 곳은 인천 연수구 등 3곳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배심원의 결정(50%)과 여론조사(50%)를 병행하는 방식이었다. 공천권을 거머쥔 국회의원들이 지역실정을 모르는 외부인에게 심사를 맡길 수 없다며 강력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전문배심원과 달리 현지배심원의 참여율이 저조한 것도 문제였다. 한나라당의 국민공천배심원제는 배심원단 구성 이후 최근까지 개점휴업 상태다. 중앙당이 선정한 후보에 배심원단의 3분의2 이상이 동의해야 공천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요구할 수 있는데다 배심원단의 구성을 두고 친이ㆍ친박계 간의 갈등도 불거졌다. 이 와중에 최고위원회와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 간의 갈등으로 공천이 번복되는 사태도 속출해 개혁공천을 무색하게 했다. 지역마다 계파 간의 격렬한 공천대결로 본 선거 이전에 내분이 격화할 것을 우려해 경선을 최소화한 전략도 공천실험의 발목을 잡았다. 공천배심원제 제도화·확대를 여야가 경쟁적으로 도입한 공천배심원제가 이렇게 흐지부지된 것은 정당공천제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고 다분히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이 제도를 활용하려 했던 측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정당마다 공천절차가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후보자마다 서로 유리한 방식을 주장하는 바람에 지역별로 다양한 공천유형이 난무하고 이에 따른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정당공천의 공정성ㆍ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공천배심원제가 제도화되고 확대돼야 한다. 그래야 식어가는 유권자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지방자치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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