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유연성 필요한 주택정책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현재 세계최고의 슈퍼컴퓨터는 중국 광저우에 있는 톈허-2호로 일명 '밀키웨이-2호'로도 불린다. 핵심칩인 코어가 300만개가 들어간 밀키웨이-2호는 일반PC의 코어가 2개 또는 4개임을 고려하면 외형적으로 PC 100만대가 연결된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 연산능력으로 치면 초당 3경3,862조회의 연산이 가능해 일반적인 인식체계로는 가늠이 어려운 무지막지한 연산능력을 지녔다. 하지만 밀키웨이-2호와 같은 슈퍼컴퓨터에도 치명적 약점은 있다. 주어진 모형에 대해서는 엄청난 속도로 연산이 가능하지만 스스로 창의적이고 유연한 모형을 만들지는 못한다.

정부주도 대량공급 정책은 한계

지금까지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운영방식을 돌아보면 무지막지한 연산능력은 갖췄으나 모형은 세련되지 못한 슈퍼컴퓨터가 떠오른다.


단기간 대량공급과 1세대 1주택주의라는 정책목표를 위해 전방위적인 대책을 통해 엄청난 실행력을 보여 왔고 일정 성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이제는 연산능력보다는 변동성이 확대된 시장변화에 맞는 유연성을 갖춘 창의적인 모델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최근 들어 주택시장 회복에 대한 기대가 크다. 하지만 불안 요인도 적지 않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신흥국에 대한 불안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되고 있다.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도 걱정스럽다.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와 급속히 진행되는 고령화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올해 시장이 회복된다 하더라도 불안한 거시경제 여건으로 제한적일 것이다. 당분간 시장여건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거시경제적 변동성은 확대되고 기존의 위험 요인은 지속되는 한편, 새로운 위험요인들은 곳곳에서 등장할 것이다. 결국 앞으로 주택정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변동성 확대에 대응한 유연성과 현장 임기응변 능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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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중앙집권적 법제화 중심의 정책운영은 뒤돌아봐야 한다. 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되는데 국회 통과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정책 대응력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유사한 경험을 지난 몇 년간 반복하며 부작용을 몸소 겪었다. 여기에 더해 지역 변동성까지 고려하면 지방정부의 역할도 확대돼야 한다. 민간 역할에 대한 재인식도 필요하다. 민간의 효율 없이 창의적인 정책은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다.

민간이 적극 참여 가능한 환경조성을

민간이 적극적으로 참여 가능한 시장 환경을 제공하고 공공의 이익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현재 추진 중인 민간 임대사업 활성화는 시범대가 될 것이다. 공공이 자금·세제 등 정책적 지원으로 사업이 어려운 시장 환경을 극복시켜주면 민간은 안정적인 임대주택 공급과 건설에 따른 고용창출이라는 공익을 돌려줄 것이다. 이는 단순한 목표 지향적 정책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우며 시장 메커니즘을 고려해 시장 참여자들의 이익과 리스크를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정책적 기반이 만들어졌을 때 가능하다.

이제 우리나라 주택시장도 성숙기로 이행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무지막지한 연산능력보다는 변동성이 확대된 시장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세련된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사업자·국민 모두가 이익이 되고 수긍할 수 있는 유연한 주택정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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