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푸젠성을 찾았다.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3일 동안 시 주석은 푸젠성 닝더·구톈진·핑탄 등에서 민생행보를 이어갔다. 잔칫상을 차려놓고 손님을 기다려야 할 집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셈이다.
시 주석은 국가적인 중대결정이나 권력기반을 강화하는 사건 후 '정치적 고향'인 푸젠성을 찾는다. 중국 공산당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국 상무위원 출신인 저우융캉을 잡던 날도 시 주석은 푸젠성의 군부대를 방문해 군인들을 격려했다.
푸젠성은 시 주석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곳일까. 시 주석은 1985년부터 2002년까지 샤먼·닝더·푸저우 등 푸젠성 일대에서 17년6개월 동안 근무했다. 푸젠성 성장도 지냈다. 시 주석도 스스로도 "푸젠은 나의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푸젠성을 반부패운동의 출발점이라고 표현한다. 1988년 푸젠성에서 가장 개발이 더딘 닝더 서기로 임명된 시 주석은 먼저 간부들의 불법 개인주택을 조사해 1,399명의 간부를 처벌하며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시 주석의 개혁·개방에 대한 정책 실험도 푸젠성에서 이뤄졌다. 10년간 푸저우시 서기로 일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개혁·개방으로 다듬었다. 그래서인지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 등은 시 주석의 푸젠성 방문을 '인민의 평안을 살피고 있다'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의법치국 인민 지지·정당성 확보
의법치국을 내세운 중국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와 APEC회의 사이에 시 주석이 푸젠성을 찾은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일 수도 있다. 하지만 3일간의 일정은 푸젠성에서 그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 우선 권력 강화에 대한 인민의 지지다. 4중전회는 시진핑 정부에 전환점이자 권력 강화의 분수령이다. 지난해 말 3중전회가 개혁·개방과 반부패라는 화두를 던졌다면 4중전회는 개혁과 반부패의 확장과 연계성을 강조한다. 쉽게 말해 3중전회에서 "부패하면 처벌하겠다"고 했다면 4중전회에서는 의법치국 원칙을 바탕으로 "부패해도 개혁하지 않아도 처벌하겠다"라는 말로 수위를 높였다. 구톈진에서 전군지휘관 회의를 열고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의 처벌을 언급한 것도 4중전회의 원칙인 법치에 대한 군부의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자신의 권력기반인 군부와 하층인민의 지지를 통해 반부패와 개혁에 대한 정당성과 추진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양안 문제의 접점인 푸젠성에서 대만과의 협력을 강조한 점이다. 시 주석은 핑탄종합실험구에서 대만 기업인과 간담회를 열고 대만을 '중국 개혁과 발전을 위한 조력자'라고 말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등에 중국이 집중하며 소외되고 있는 양안 관계를 다독거렸다. 중국은 한중 FTA와 양안상품무역협정의 견제와 경쟁을 통해 최대의 이익을 올리겠다는 속내인 만큼 속도를 내는 한중 FTA에 비해 뒤처진 양안 통상관계를 독려하고 있다.
6일 한중 FTA 14차 협상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실장급 실무협상단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된 이번 협상에서 양국은 담판을 짓겠다고 벼르고 있다. 양국 정상이 연내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합의했고 13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남은 것은 양국 고위급의 정치적 판단이라고 하니 APEC 정상회의 일정 중 타결의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한중 FTA, 국민 목소리 귀 기울여야
하지만 걱정이다. 한중 FTA 협상과정이 밀실협상에 이어 사실상 재협상이라고 시끄러웠던 2007년 한미 FTA 협상과정과 너무도 닮아간다. 당시 한미 FTA 협상도 3월 말까지 시한을 두고 막판 장관급 협상을 통해 그해 4월1일 자정을 넘어서야 타결했다. 7년이 지나 똑같이 한중 FTA도 정치적 목적과 시간에 쫓기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2002년부터 논의가 시작된 한중 FTA는 이미 다양한 의견이 반영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과 영세·중소기업들이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정책의 과감한 추진도 중요하지만 정책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최고 지도자의 행동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