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학원을 연다고요. 어디서 ‘최소한 망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듣고 투자하는 것 같은데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는 걸 알아야죠.”
서울 강남의 한 학원 관계자는 요즘 강남 학원가의 침체된 분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동안 경기침체 속에서도 호황을 누리며 ‘불패신화’라는 말까지 낳았던 서울 강남의 학원가와 부동산업계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학원가는 불황에다 ‘EBS 수능방송’이라는 정부의 강력한 사교육억제책까지 시행되자 건물 임대료도 내지 못하는 곳이 늘고 있으며 부동산업계도 아파트 값 하락과 개발이익 환수라는 초강력 부동산대책으로 재건축아파트 등의 매기가 뚝 끊기며 현상유지에 급급한 실정이다.
◇학원가 폐원 잇따라=14일 서울 강남교육청에 따르면 입시ㆍ보습학원의 폐원신고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서울시교육청 발표내용에는 입시ㆍ보습학원이 밀집해 있는 강남ㆍ서초구의 경우 올 상반기 폐원한 학원이 1곳도 없는 것으로 집계돼 강남 지역은 불황 무풍지대처럼 인식돼왔다. 그러나 강남ㆍ서초구를 관할하는 강남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폐원신고를 낸 입시ㆍ보습ㆍ어학원은 지난 1월 7곳, 2월 13곳, 3월 14곳, 4월 9곳, 5월 5곳 등으로 폐원신고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C아카데미의 황모 원장은 “강북의 학원뿐만 아니라 강남 학원도 겨우 버티고 있는 수준”이라며 “주변 학원 모두 여름방학을 기대하는 눈치지만 경기불황과 정부의 사교육대책 때문에 기대할 게 없다”고 말했다.
서초구 잠원동 K학원의 한 관계자는 “경기불황의 탓도 크지만 EBS 수능방송이 시작되면서 중소학원들의 경영이 어려워진 것 같다”며 “여름방학을 대비해 EBS에 출연하는 스타강사들을 스카우트하는 등 살아남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업체도 불황 그림자=강남ㆍ서초구에서 문을 닫는 부동산업체도 늘고 있다. 강남구청에 폐업을 신고한 부동산중개업소는 1월 40곳, 2월 45곳, 3월 65곳, 4월 53곳, 5월 52곳을 기록했고 서초구에 폐업신고를 낸 부동산중개업소도 1월 44곳, 2월 39곳, 3월 42곳, 4월 37곳, 5월 37곳에 달했다.
강남구청 지적과의 한 관계자는 “매월 새로 등록한 업체가 폐업한 업체보다 많아 부동산중개업소 순증 추세는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문을 닫는 업체가 많고 신규등록했다 얼마 가지 않아 문을 닫는 업체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5월 말 현재 강남구의 부동산중개업소는 2,100여개로 대구광역시 부동산중개업소의 83% 수준”이라며 “포화상태에 도달한 강남 부동산업계가 경기불황의 영향으로 조만간 구조조정에 들어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 반포동 J부동산의 홍모 사장은 “거래가 80~90% 감소해 예전에 벌어놓은 것으로 연명하고 있다”며 “지난해 12월부터 사실상 적자상태로 이런 상태가 지속될까 암담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실업자 구제 차원에서 매년 2만명 이상의 공인중개사를 새로 뽑아 개업하는 곳은 많지만 대부분 짧게는 한달, 길게는 1년 이내에 팔고 나간다”며 정부를 원망하기도 했다.
최석영기자 sychoi@sed.co.kr
이종배기자 ljb@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