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월31일] 익스플로러 1호

1958년 1월31일 오후10시48분,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현 케네디 우주센터). 주피터 C형 로켓이 불을 뿜었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의 발사 순간이다. 추진체에서 분리된 무게 14.2㎏짜리 인공위성은 5월23일 전지가 떨어질 때까지 반 앨런 자기장의 존재를 밝혀내는 등 과학적 성과를 남겼다. 미국인들은 익스플로러 1호에 고무됐다.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으로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진 지 4개월 만에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해 10월 항공우주국(NASA)을 신설하는 등 국력을 쏟아 부었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간 우주개발 경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소련은 더 앞서나갔다. 최초의 유인 우주선 발사도 소련의 몫이었다. 1961년 4월 인류 처음으로 우주를 비행한 유리 가가린이 남긴 “지구는 푸른 빛이다”라는 명언에는 자신감이 녹아 있다. 미국이 소련을 추월한 것은 1966년 3월, 제미니 8호의 우주 도킹 이후다. 미국은 1969년 7월 아폴로 11호를 달에 착륙시켜 확실한 경쟁 우위를 확보했다. 앞서게 된 요인은 두 가지. 돈과 사람이다. 아폴로 계획에만 250억달러를 투입하고 우수한 과학인재를 양성ㆍ유치하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개혁한 결과다. 냉전 종식으로 우주경쟁은 한풀 꺾였지만 한반도 주변의 하늘은 오히려 더 뜨겁다. 유인우주선 ‘선저우 5호’ 발사 및 귀환에 성공한 중국은 우주 개발에 매년 20억~3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유인우주선을 ‘일본판 스푸트니크 쇼크’로 간주, 미국과 1,040억달러짜리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할 계획이다. 2008년이면 우리도 우주인을 배출한다지만 주변국과의 거리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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