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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법 없이 살 수 있어도 법을 모르고서는 살 수 없다. 세상에는 많은 법이 있지만 형법은 특히 그렇다. 나의 신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13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발생빈도가 잦은 순으로 폭행, 상해, 성폭력, 방화, 살인이 일어났다. 하루 평균 2.8명이 살해당했고 그중 우발적으로 살해당한 경우가 40%를 넘었다. 가장 드문 살인이 이 정도니, 상해나 폭행 등의 범죄가 우리 삶을 얼마나 빼곡히 채우고 있을지 심각해짐을 느낀다. 즉 나만 잘해서는 험한 세상을 온전히 버텨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야기 형법'은 1,100만 관객의 영화 '변호인'의 자문을 맡기도 한 양지열 변호사가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극적인 현실에 대처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남이 저지르는 범죄를 읽어내는 안목을 제시할 뿐 아니라 사기, 공동정범(공범), 횡령, 배임, 장물 등 알고서 혹은 모르고서 저지르는 일상의 갖가지 범죄에 얽혀들지 않게끔 법리를 풀어놓는다.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점을 당연히 형법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삶에는 형법의 원칙과 맞지 않는 부분, 즉 빈틈이 존재한다. 형법을 만든 것도 인간이고 이를 적용하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형법은 사람들간의 대립하는 의견들이 절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일도양단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타협과 양보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형법도 사람들이 서로서로 자유롭게 만든 규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모르는 것은 자유의 침해에 대한 방조죄가 될 수 있다.
모두 40꼭지로 구성된 책은 ▦총칙 ▦개인적 법익에 대한 죄 ▦사회적 법익에 대한 죄 ▦국가적 법익에 대한 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얼개는 형법전을 그대로 따랐으나 실제 사건을 각색하고 개중엔 사법시험 문제로도 출제된 사례들이 울고 웃는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형법 그 자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있다. 현대 형법은 '죄'에 대한 연구는 많은 반면 '벌'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다. 기껏해야 징역을 몇 년이나 살릴지, 강력범은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 정도다. 중요한 것은 죗값과 함께 어떻게 해야 다시금 범죄의 길로 빠지지 않게 할까 고민하는 일이다. 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예방이기 때문이다. 결과 중심일 수 밖에 없는 법학의 한계를 넘어 인문학 등 인접 학문과의 교류와 연계가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1만6,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