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감사 자리의 재발견

M기업 감사는 기획부장이다. 등기상에는 그의 이름이 감사로 올라있지만 이 사람이 회사에서 맡은 직책은 기획부장이다. C기업 감사는 사장의 4촌 아우다. 회사가 아니라 골프장이 '근무처'다. 정권이 바뀔 때 '패거리들'에게 낙하산을 하나씩 나눠주고 내려가 보라고 하는 '무난한'자리도 이 자리다. H기업에는 상근 감사는 있는데 감사실은 아예 없다. 있으나 마나 한 자리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주식회사의 사법부는 이렇게 유명무실하다. 그러니 내부로는 썩거나 멍이 들어도 깊게 들어 외부의 칼을 맞게 된다. 상법 제409조에서 415조까지를 읽어보면 감사는 막강한 자리로 나와 있다. 회사의 수상하고 냄새나는 구석이 있으면 그걸 드러내는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 사장도, 집행부의 이사들도 꼼짝 못한다. 회사를 위해 '중대 결심'만 하면 임시주총을 이사회에 요구할 수가 있다. 감사가 요구하면 집행부서는 조사를 해야하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법에는 모두 강제규정이라고 적혀 있다. 제도상으로 확보해주고 있는 대단한 기업권력이다. 대신 회사 잘못되는 걸 감시하지 못했을 경우는 배상책임의 짐을 지운다. 권리가 큰만큼 의무도 크다. 그런데 등기부에 아무 이름이나 올려놓고 친인척 월급 주는 자리로 둔갑하고 정치 패거리의 감투직으로 이용된다. 1년에 한번 주총에 나와 "당기 업적 지표는."하고 감사보고서를 읽으며 "아주 적절하게 작성된 것으로" 어쩌고 하면서 임기보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게 감사다. 실제로 그렇다. 어느 회사에서도 감사는 '물'이다. 그야 사장이 자리를 만들어주고 집행부와도 잘 지내야 자리보전이 된다는 게 불문율이요 일반의 인식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회계부정 사건이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 증권시장은 곤두박질을 치고 경제를 둘러싼 예측들은 흉흉하고 대중은 잔뜩 겁들을 먹고 있다. 아마 미국 기업의 감사들이 한 통속으로 놀아난 모양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변괴일까. 주식회사 제도를 잘못 읽고 편의대로 고스톱을 짜고 치다 벼락을 맞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럼 우린 한 가지만 다시 법 얘기를 해 두자. 상법 409조 2항에 의하면 아무리 오너 사장이라도 감사를 뽑는 주총에서 3%밖에 영향력(의결권)을 행사할 수가 없다. 아주 독립되고 권위 있고 당당한 게 감사자리다. 회사 안 망하게 하는 자리인데 그걸 잘못들 생각하고 있다. 손광식(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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