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월드컵 축제는 문화계의 수난?

지난 21일 점심 서울시내의 한 식당. 10명 남짓한 국내 관광업체 사장들이 여행 담당 기자들과 머리를 맞댔다. 올 초 발족한 여행사협의회 임원들은 대뜸 한숨부터 터뜨린다. “이건 축제가 아니라 재앙입니다… 재앙.” 온 국민의 관심이 월드컵에 쏠리면서 최근 국내 여행업계 매출은 뚝 떨어졌다.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다. 스위스전이 열리는 24일 주말 연휴는 장마까지 겹쳐 예약 취소 사태마저 잇따르고 있다.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서 국내 관광업계는 큰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2박3일씩 여행을 가는 이들은 드물고 토요일 하루 코스로 머리를 식히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여행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도 오히려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여행사에서 마련한 패키지 여행보다는 인터넷에서 찾아낸 정보를 들고 직접 드라이브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쩌다 걸려오는 전화도 받아보면 여행지로 가는 길을 묻는 전화예요. 직원들 얼굴 보기가 민망합니다.” 여행업체뿐 아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월드컵에 쏠리면서 극장가와 공연가도 울상이다. 대학로 공연장은 휴관하는 곳도 많다. 월드컵 기간 동안 아예 일찌감치 문을 닫고 리모델링하는 곳도 생겼다. 제작비 100억원을 들였다는 초대형 국산영화 ‘한반도’는 당초 6월 중순 개봉 예정이었지만 월드컵 포화를 피해 한달 정도 늦췄다. 대규모 자본력을 가진 기획사가 마련한 뮤지컬은 티켓 가격을 할인하거나 월드컵 마케팅을 하며 맞불 공략을 펴고 있지만 이마저도 결과는 신통치 않은 편이다. 문화계에서는 월드컵ㆍ올림픽 등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인기 스포츠 제전 때마다 수난을 당하지 않으려면 근원적인 전략을 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곳에 온 국민이 몰려가는 문화적 현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문화적 다양성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한숨과 하소연으로 시작한 이날 간담회는 결국 “다음주에 여행사협의회 임원들끼리 제주도 투어를 가자”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자체적으로라도 매상을 올려보자는 기상천외한 해결책은 월드컵이 만들어낸 한편의 눈물겨운 코미디다. 홍병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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