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는 대박, 안에서는 쪽박.’ 이는 최근 ‘오세암’ 등 국산 애니메이션들이 해외 유수의 영화제를 석권, 그 작품성은 인정 받고 있으나 정작 국내 시장에선 관객들에게 철저히 외면 당하고 있는 현실을 두고 나온 평가다.
지난 해 국내에서 개봉한 3편을 비롯해 지난 몇 년 간 대부분의 국산 극장용 애니메이션들이 흥행 참패의 쓴 맛을 봤다. 마케팅력과 극장 배급에서 많은 문제점이 제기됐다. 특히 이 같이 계속되는 흥행 실패가 자칫 애니메이션산업 자체의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작품성은 성공, 흥행은 실패 = 이 달 들어 국내 애니메이션계에는 잇달아 낭보가 전해졌다. 12일 폐막한 2004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오세암’이 2002년 ‘마리이야기’에 이어 최고 영예인 대상을 수상했다. 또 다음달 9일 브라질에서 열리는 ‘2004 브라질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엔 ‘일곱살’(김상남) ‘인사이드 아웃’(전영찬) 등 9편의 작품이 대거 초청됐다.
그러나 정작 국내 시장에선 찬밥 신세다. 지난해 개봉한 ‘오세암’ ‘원더풀 데이즈’ ‘엘리시움’ 등 3편의 국산 애니메이션들은 각각 10만명, 29만명, 4,200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오세암’의 경우 구민회관 등에서 모은 관객(20만명)이 극장 관객 보다 많은 웃지 못할 모습도 벌어졌다. ‘원더풀…’이 1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것을 비롯해 15억원이 든 ‘오세암’도 손익을 따지기 민망할 정도의 성적을 거뒀다.
▦흥행 실패, 그 문제점은? = 흥행실패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국내 창작물의 짧은 역사를 꼽을 수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국내 애니메이션 업체의 95% 이상이 해외 하청 업체였던 점을 감안하면 일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현재도 2,000억원 규모(2003년 문화관광부 산업백서 기준)의 국내 애니메이션 매출액 중 극장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업계에선 낙후된 마케팅 능력과 배급력을 지적한다. 국내 대부분의 업체들은 제작만도 버거운 상황이어서 부대 마케팅은 엄두도 못 낼 뿐더러, 국내외 흥행작들에 밀려 개봉관을 잡는 것 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국산 애니메이션의 경우 서울에서 10여개 스크린도 확보하기 힘들고 그나마 교차상영(오전 상영이나 1,3,5회 상영)의 비운을 겪으며 1~2주만에 간판을 내리는 게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국내 대다수 업체들은 극장용보단 TV 애니메이션 제작에 나서고 있다. TV용은 방송사라는 안정적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고, 홍보 등 부대 사업들이 상대적으로 충실하다는 장점이 있다. 지난해 공중파ㆍ케이블 등을 통해 방영된 국산물은 ‘탑 블레이드’ ‘스페이스 힙합덕’ 등 20여 편에 달하며 국내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중 80%가 TV용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TV애니메이션엔 근본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2002년 TV물 중 60% 이상이 아동용일 정도로 소재 제한이 따르다 보니 어른들도 즐길 만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나오긴 어려운 처지다. 또 공중파의 경우 해외물의 편당 수입단가가 2,000달러 정도로 국산물 제작비의 1~2%에 불과해 언제든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국산물을 외면할 소지가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극장 관객 동원에 실패해도 DVD판권, 캐릭터 상품, 게임 등 다양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며 상황을 낙관했다. 그러나 부가 이익들 역시 결국 흥행에 좌우되는 만큼 이제는 해외 영화제만큼이나 국산 애니메이션의 흥행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