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출국 이전부터 “선진국과 이머징마켓 간 협력체계의 필요성을 제기하겠다”고 벼르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긴급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꺼내든 카드는 선진국과 신흥국가 간 통화스와프 거래 요청이었다.
이번 금융위기처럼 선진국에서 발생한 위기가 신흥국으로 전이되는 역 스필오버(reverse spill-over) 현상이 일어날 경우 위기가 전이된 신흥국은 보유한 선진국 채권을 되팔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이는 다시 선진국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현재 선진국 간에 이뤄지는 통화스와프 거래를 신흥시장국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강 장관이 제기한 주장의 요지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세계적인 달러화 유동성 부족을 막기 위해 지난 9월 말 유럽중앙은행(ECB)ㆍ캐나다ㆍ영국ㆍ일본ㆍ호주 등 8개국 중앙은행과 함께 달러화의 일시적 통화 교환예치(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 한도를 기존의 2,900억달러에서 6,200억달러로 늘렸지만 신흥국은 제외된 상태다.
문제는 이에 대한 미국 측 반응이다. 미국은 긴급 G20회의를 개최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회의장을 ‘깜짝’ 방문해 위기타개를 위한 전세계의 동참을 호소하는 등 공조체제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지만 스와프 거래 확대라는 구체적인 방안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워싱턴을 방문한 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통화스와프 거래 확대는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들끼리 논의해야 할 문제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추가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미국의 입장을 전혀 가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와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가들의 스와프거래 확대 제안이 받아들여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국가 간 통화스와프 거래를 위해서는 해당국 통화들이 어느 정도 국제화돼 있어야 하는데 원화를 비롯해 G20국가 통화의 국제화 정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이번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IBRD) 총회와 G20회의에서 제안된 내용을 보면 선진국과 신흥국이 하나같이 공조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질적인 방법론에서 적잖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제윤 재정부 차관보는 “영국과 프랑스 등은 오전에 열린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 회의에서 G20 차원에서 은행거래에 대한 정부의 전액 지급보증 돌입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뱅크 런이 발생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과 달리 은행으로 오히려 예금이 몰리는 미국이나 한국 등은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신 차관보는 “회원국들이 G20 공조체제라는 막연한 인식은 공유하면서도 각국이 처한 상황과 국내 여건에 따라 구체적인 공조방안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단 이날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경제ㆍ금융조치들을 취하기로 결의하고 거시경제정책, 금융감독 및 관련규제 개선, 유동성 공급, 금융기관 건전성 확보, 소액예금자 보호 등에서 정책공조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어 오는 11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정기 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관련 논의를 진전시키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선진국과 신흥개도국의 입장 차이가 뚜렷한 상황에서 사실상 알맹이 없는 ‘공론’에 그친 이번 회의 결과가 한달 뒤 얼마나 구체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