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처음 방문했다. 베트남은 역사상 우리나라 군대가 처음 해외 원정을 한 나라, 세계최강의 미국을 물리치고 공산정권에 의한 통일을 이룬 나라라는 사실 등으로 많은 한국인들에게 착잡한 감회를 느끼게 하는 나라다. 그 수도 하노이에서 겪고 본 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두 가지다. 하나는 베트남 통일을 이룬 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의 시신이 안치된 영묘 앞에 끝없이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이고 다른 하나는 하노이 시내를 달리는 한국산 중고차들의 행렬이었다. 중고버스에는 「利관광」「○○헬스센터」등 한글표지가 그대로 있어 '이 곳이 서울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영묘 참관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 방부(防腐)처리 되어 생전의 모습을 간직한 호치민의 시신을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보면서 돌아 나가게 되어 있다. 경건한 분위기가 사람을 압도한다. 고인에 대한 이 나라 사람들의 존경이 대단하다고 한다. 독립과 통일을 위해 결혼도 않은 채 평생을 투쟁으로 보냈고 국가 주석이 된 뒤에도 큰 저택을 버리고 서민들과 같은 검소한 생활을 했다니 존경을 받는 이유가 짐작됐다. 사람들을 단합시켜 세계 최강의 미국을 굴복시킬 수 있었던 힘의 원천도 그 같은 그의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온 국민을 반세기에 걸친 고통스런 투쟁으로 몰아 넣으면서 이룩한 성과가 '실패한 실험'이란 딱지가 붙은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이었다는 사실은 그 자신을 위해서나 베트남 국민을 위해서나 불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생생한 증거가 바로 시장경제의 수용과 대외개방을 내용으로 하는 86년의 '도이 모이'(새로운 개혁)의 선언이며 그 같은 방향전환의 결과로 호치민 영묘 앞을 질주하게 된 한국산 중고차들의 행렬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과거와 현실이 엇갈리는 하노이의 모습을 보면서 떠오르는 또 하나의 상념은 베트남 못지 않은 어려운 여건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한국을 건설한 우리의 경우 어찌하여 번듯한 지도자의 동상하나 볼 수 없는가 하는 아쉬움이다. 신성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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