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21세기 문화 한국 기대한다

성기선 <줄리아드음대 교수>

필자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연주 활동을 하는 관계로 방학이 낀 여름에 고국인 한국에서 연주회를 해왔다. 모처럼 한국에 돌아오면 한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들이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기쁜 일이지만 음악회를 통해서 고국의 음악가들과 청중들을 만나게 되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국내 음악계 양적·질적 성장 고무적인 일은 미국 유학을 떠날 무렵인 지난 90년대 초에 비해서 음악계가 질적ㆍ양적인 면에서 많은 성장을 했다는 점이다. 필자의 전공 분야인 지휘는 특성상 여러 음악가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서 연주회를 준비하게 된다. 여러 교향악단의 지휘를 통해서 만난 한국 음악인들은 대부분 훌륭한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최근에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많은 젊은 음악인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정을 가지고 음악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인 만남은 아니지만 지휘한 음악회를 관람하러 찾아온 청중들도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주로 연주회가 열리는 곳이 서울이지만 가끔씩 지방 연주회도 하게 되는데 그 지방의 청중들을 만나는 것은 소중한 체험이었다. 한 교향악단의 연주를 지휘하면서 방문한 강원도의 마을에서 가진 연주회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그야말로 ‘산 좋고 물 맑은’ 강원도 청정지역, 아름다운 고장의 언덕에 아담한 연주 홀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대도시와 달리 인적이 드문 이곳에 과연 청중들이 많이 올까 하는 염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염려와는 달리 어디서 모였는지 연주 홀은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찼고 연주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성적으로 연주해줬다. 특히 그곳 청중들이 도회지 사람들과는 어딘가 모르게 다른 순박하고도 맑은 눈망울로 필자의 해설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연주를 들어주던 그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번 여름 예술의 전당에서 지휘한 오페라 ‘마술피리’를 통해서 많은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22회나 되는 장기 공연이어서 출연진들에게는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기획이었지만 미래의 청중들이 될 어린이들에게 그들 생애에서의 첫 오페라를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 참 보람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오페라로 기획이 됐기 때문에 생각보다도 어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와서 관람석을 메웠다. 사실 모차르트 만년의 대작 ‘마술피리’가 어린이들에게 결코 이해하기 쉬운 오페라는 아닌데도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진지하게 감상을 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대 위 성악가들의 대사나 움직임에 어린이들이 어른들보다도 더 빠르고 섬세하게 반응했다는 점이다. 공연 후 이야기를 나눈 한 미취학 어린이는 등장인물의 이름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과 비교해볼 때 상당히 조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인이 감성이 풍부하고 음악적인 자질이 뛰어나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고 많은 외국인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줄리아드음악학교에서도 여러 우수한 한국 학생들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한때의 음악 붐으로 인해서 한국 음악계는 많은 우수한 젊은 음악가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유능한 음악인들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에는 아직도 어려운 여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경험과 음악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 중앙의 몇몇 공연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연장들이 다목적 홀로 지어졌기 때문인지 공연에 적합하지 않은 음향을 지니고 있고 이것은 연주자가 아무리 열심히 연주해도 객석에는 그 전달되는 효과가 반감되는 안타까운 현상을 초래한다. 많은 영세한 공연기획사들은 빈약한 재정과 인력으로 수준 미달의 연주회를 열기도 한다. 필자도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했던 미국 친구들과의 한국 공연이 초청기획사의 재정난으로 갑자기 취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공연 예술 행정의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정부등 순수예술 적극 지원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순수예술은 상업예술과는 달리 지원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아무리 우리 민족이 음악적이고 예술에 재능이 있어도 그 점을 이해하는 정부나 공익을 생각하는 기업의 장기적이고도 전폭적인 지원이 있을 때라야만 그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점에서도 물론 예술가들의 많은 노력이 선행돼야 하겠지만 아직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의 인식이 많이 부족한 것을 느낀다. 예술가들이 시장 논리에 의해서만 생존할 것을 강요당한다면 문화예술의 진정한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어려운 점들을 슬기롭게 잘 극복해 말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한국인들의 문화적인 우수성을 전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21세기의 문화 한국’이 실현될 그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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