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인재허브 전략이 글로벌 기업들을 대거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INSEAD)를 졸업하고 현재 삼성싱가포르에서 마케팅 부장으로 일하는 데이비드 앙리씨는 “싱가포르가 글로벌 기업들을 많이 유치하고 있는 것은 우수한 인재풀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7%(2005년 6.4%). 우리나라가 5%선을 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과 대조적으로 싱가포르는 성장 가속도가 붙은 모습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대대적인 개방경제 공세로 국가 생존의 위기에까지 내몰렸던 싱가포르가 어떻게 이처럼 화려한 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앙리씨는 “싱가포르는 우수한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 인재들 유치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며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다 보니 언어적 장애가 없다는 점도 글로벌 기업이 이곳에 아시아 지역본부를 세우는 커다란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우수한 인재풀 구성→글로벌 기업 유치→일자리 창출→글로벌 인재 유인’이라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 생고무처럼 탄력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됐다는 이야기다. ◇인재가 기업 부른다=싱가포르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세계적 MBA스쿨인 인시아드. 4층 사무실에서 만난 고피카 스파엔레 이사에게 다짜고짜 “왜 인시아드가 한국 송도가 아닌 싱가포르에 아시아 캠퍼스를 열었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스파엔레 이사는 빙그레 웃으며 손으로 창문 밖을 가리켰다. 그는 “이 캠퍼스 부지는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이 마련해줬다”며 “캠퍼스를 유치하기 위한 싱가포르 정부 차원의 노력이 대단했다”고 설명했다. 스파엔레 이사는 “경제개발청이 필요한 정보를 제때 제공해주고 협력할 수 있는 글로벌 기업들을 잘 매칭해준다”며 “이곳 교수들은 글로벌 기업들을 컨설팅하며 단기과정을 운영하기가 쉬워 다들 만족해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는 현재 유럽 최고의 MBA인 인시아드를 비롯해 시카고 경영대학원, MIT, 존스홉킨스대 등이 들어와 글로벌 인재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들은 이곳에 있는 4,000여 글로벌 기업의 ‘인재풀’이 돼주고 있다. 싱가포르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바이오 연구단지인 ‘바이오폴리스’에는 세계 2위 제약업체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퇴행성 신경질환 연구센터를 비롯, 노바티스(열대병연구소), 존스홉킨스대(바이오메디컬부), 머크(Merck), 일본의 세이코(Seiko)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바이오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복제 양 ‘돌리’ 연구에 참여했던 영국 로슬린(Roslin) 연구소의 콜먼 박사도 여기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앙친타 경제개발청 과장은 “싱가포르는 노동법이 엄격하지 않고 비자발급도 까다롭지 않아 외국인 인재를 뽑기 쉽다”며 “글로벌 인재들이 바이오 연구를 위해 이곳에 모여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열대병 치료제를 개발 중인 노바티스의 경우 미얀마ㆍ이디오피아ㆍ미국ㆍ캐나다ㆍ프랑스ㆍ뉴질랜드ㆍ중국 등 18개국에서 온 85명의 과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재 키우는 나라=섭씨 40도를 육박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월 말.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19위 대학인 싱가포르국립대학교(NUS)의 도서관은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프렘 삼다사니 NUS 비즈니스스쿨 부학장은 “NUS의 강점은 뛰어난 연구ㆍ교수 능력과 세계수준의 인프라”라고 밝혔다. 2005년 7월 NUS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모 글로벌 기업에 근무 중인 김선빈씨는 “25명이 토론식으로 하는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 3~4시간 정도밖에 못 자는 경우가 많았다”며 “교수님들에게 e메일을 보내면 1시간 내 답을 해줄 정도로 열정적으로 가르치고 방학 때마다 강의실ㆍ기숙사의 인테리어를 이노베이션한다”고 소개했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의 경쟁력의 원천은 뭐니 뭐니 해도 우수한 자질의 입학생들이다. 싱가포르의 공립학교는 철저한 우열반 수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10%의 상위학생을 뽑아 ‘스페셜’반을 운영한다. 다음 50%는 ‘익스프레스’, 그 다음 40%는 ‘노말’이다. 하위 40%는 중학교를 갈 때 공업계나 실업계를 가야 한다. 고등학교, 즉 2년제 대학 예비학교인 주니어칼리지를 가는 학생 수는 전체의 20%도 안된다. 철저한 엘리트 양성 교육인 셈이다. 이렇게 걸러진 상위권 학생들만이 싱가포르국립대학교나 난양공과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류근정 골든벨 싱가포르유학원장은 “초등학교는 198개지만 중학교는 168개, 주니어칼리지는 22개로 아예 상급학교가 절대적으로 적다”며 “주니어칼리지 학생의 40~50%는 미국 아이비리그로 간다”고 전했다. ◇10개월 지나면 영주권 줘=싱가포르 정부는 오래전부터 인재허브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현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재들에게 10개월만 지나면 바로 영주권을 신청하라고 초대장을 날린다. 외국인이 살기 좋고 차별 없는 ‘국제도시’ 싱가포르에 눌러 살라는 것. 또 NUS 등 국립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학비의 70%가량을 장학금으로 주고 3년간 싱가포르에서 의무근무를 하게 한다. 레자 샤 모흐드 안와르 NUS 외국학생부장은 “90년 초 10%이던 외국인 학부생 수가 99년 20%를 넘어섰고 이중 40%는 영주권을 얻어 싱가포르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우수한 글로벌 인재들을 양성하고 끌어들여 인재풀을 만들고, 이 인재풀이 글로벌 기업들을 불러들여 좋은 일자리를 대거 창출, 다시 글로벌 인재를 불러들이는 인재 선순환 시스템을 정착시킨 싱가포르. 인재를 앞세워 아시아 허브국가로 성장하는 싱가포르는 인재유출에 허덕이는 한국을 까마득히 앞서가고 있다. /특별취재팀:오철수차장(팀장)·문성진(베이징특파원)·이규진·서정명(뉴욕특파원)·김현수·김호정·김민형·김상용기자 csoh@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