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25일] 트라이앵글 화재 사건

‘불이야!’ 8층 원단 창고에서 한 노동자가 외쳤다. 불은 순식간에 번졌다. 소화기도 소용없었다. 썩었기 때문. 화마는 9층과 꼭대기층인 10층도 삼켰다. 최종 사망자 146명. 대부분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유럽에서 건너온 10대 소녀들이었다. 종업원 500명 중 살아남은 사람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1911년 3월25일 오후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발생한 트라이앵글 화재사건의 개요다. 희생자가 많았던 이유는 비상구가 닫혀 있었기 때문. 트라이앵글 셔츠회사(Triangle Shirtwaist Company)는 노동자들이 비품을 훔쳐 나갈 수 있다며 문을 걸어놓았다. 전화도 없었다. 작업효율이 떨어진다며 차단한 탓이다. 노동자들이 매달렸던 건물 외벽의 나선형 철제 사다리는 중량과 고열로 벽에서 떨어져 나갔다. 사건은 세상을 뒤흔들었다. 저임금에 하루 14시간의 장시간 노동,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작업환경이 속속 드러났다. 사람들을 가장 분노하게 만든 것은 재판. 사주 두 사람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의는 어디 있냐’는 외침도 소용없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유족은 사망자 일인당 75달러의 보상금 판결을 받았을 뿐이다. 기관총까지 들이대며 노동운동을 탄압하던 미국이 1915년 노동자재해보상법을 만든 것도 이 사건의 영향이다. 1910년 각국 여성들이 모여 1908년의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 시위를 기리기 위해 3월8일로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을 트라이앵글 화재 발생일로 바꾸자는 논의가 일 정도로 노동운동에 미친 영향도 컸다. 트라이앵글 화재사건 96년이 지났건만 약자에 대한 비인간적 착취구조는 여전하다. 저임금의 불법 이민자를 마구 부리는 미국 기업에서 이 땅의 내외국인 노동현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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