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노무현 대통령은 화가 났을 것이다. 상당수 신문들이 ‘민생문제 다 책임질 수 없다’는 식의 제목으로 자신의 신년연설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연설요지는 한마디로 말해 민생문제는 문민정부 시절 물려받은 것이며 민생문제를 만든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물려받은 위기를 무난히 관리했으며 정부의 경제정책은 잘 가고 있다는 것이다. 민생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아프지만 집권 초기보다 좋아졌으므로 지금을 민생파탄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도 곁들였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 극단적이다. 부동산을 한번에 잡지 못한 것은 죄송하지만 결국 ‘부동산 신문’들이 흔들지 않았다면 더 센 정책이 안 나왔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기득권층인 고가 부동산 보유자들의 반대가 많아 정책집행이 지장을 받다 보니 실기를 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성장과 분배 논란에 대해서도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성장이 기본이지만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적으로 나눈다면 우리 경제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사회정책까지 동원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민생문제 다 책임질 수 없다’는 제목으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경제위기를 물려받은 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국민들은 이를 극복하고 경제를 더 활성화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대통령은 누구나 전 정부의 경제정책이 빚은 결과를 물려받지만 이를 탓하는 것은 스스로 체면만 손상시키게 마련이다. 또한 과거 압축성장을 경험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기도 하지만 보기 드물게 세계경제가 호황을 구가하는 동안에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집권 초기보다 경제지표는 아주 좋아졌다고 하는데 실질소득은 크게 늘어나지 않아 국민들이 상심하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양극화 현상은 세계적인 조류이고 분배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분배에 치중한 정책은 성장의 활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 부동산 대책은 더욱 엽기적이다. 수요억제정책은 하등 잘못된 게 아니다. 다만 공급확대정책과 함께 처방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더욱이 지난 2003년 10ㆍ29 부동산대책은 로드맵이었을 뿐이다. 당장 실천하기에는 관련 전산망조차 완성되지 않았었다. 준비되지 않은 설익은 대책이 반발하는 수요자의 덫에 걸린 셈이다.
’80/20 법칙’으로도 불리우는 파레토 법칙이라는 게 있다. 매출의 80%가 20%의 진성고객 또는 핵심제품에 의해 발생하고 총생산량의 80%는 20%의 핵심사원이 만들어낸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롱테일(Long Tail) 경제학’이라는 것도 있다.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80%의 틈새상품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IT 거품 붕괴를 견디고 살아남은 아마존이나 랩소디 등의 성공비결을 두고 와이어드 편집장인 크리스 앤더슨이 만들어낸 용어다. 이들 온라인 업체는 오프라인 업체가 진열하거나 구비할 수 없는 비인기 상품으로 수익을 올린다.
자원의 희소성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파레토 법칙을 대신할 새로운 미시경제학 이론인 셈이다. 그러나 롱테일 경제학이 이루어지려면 온라인의 세계처럼 무한공간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경제에는 롱테일 경제학보다는 파레토 법칙이 더 요긴한 것 같다. 일자리 창출이나 소비가 부진한 것은 모두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며 이는 미약한 투자로 우리 산업의 부가가치를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거나 선택과 집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다니엘 벨이 설파했듯이 정치는 참여를, 경제는 효율성을, 문화는 자기 고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정치참여에서 배제하면 안되듯이 경제현안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풀어나가서도 안될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노 대통령의 신년연설을 들으면서 참여정부 4년의 평가보다는 21세기 국가발전 전략을 더 많이 듣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