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02년 개통예정인 경부고속철도가 총체적 부실 시공으로 드러나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대형참사가 국민들의 뇌리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이같은 안전 불감증이 재현되다니, 도대체 관계당국은 이 나라 국민들을 뭘로 보고 있는지 한번 묻고 싶다.한국고속철도공단에 따르면 미국의 안전진단 전문업체인 위스 제니 엘스너(WJE)사는 지난해 8월부터 올 1월말까지 6개월간에 걸쳐 경부고속철 천안∼대전 시험선 구간과 서울∼천안 일부 구간 등 총 1천12곳의 교량·터널·암거 등에 대해 정밀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이 가운데 보수가 불필요하다고 진단한 2백97곳(29.4%)을 제외한 7백15곳(70.6%)의 구조물에 대해서는 하자 판정을 내렸다. 특히 교량 상판의 교좌장치 시공 불량 등 39곳은 안전상 재시공해야 할 것으로 조사됐다.
WJE사의 이같은 보고는 일부 국내 건설회사들의 반발처럼 「지나친 것 아니냐」는 부분적인 과장성도 있겠지만 WJE사가 국제적인 신인도가 높은 감리회사라는 점에서 엄청난 충격이다. 한보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판국에 터져 나온 경부고속철의 부실시공은 이 나라가 외국에 「부패 공화국」,「부실 공화국」으로 내비치지나 않을까 우려 되고 있다.
○예고된 총체적 부실 또 충격
경부고속철은 서울∼부산간 4백12㎞를 잇는 공사로 공사비만도 지난 93년 불변가격 기준으로 10조7천4백억원에 달하는 단군이래 최대의 역사이다. 이같은 대역사를 우리는 90년 노선확정 발표이후 불과 2년만인 92년 6월30일 착공에 들어갔다.
○정부·공단·시공사 합작품
당시 차종 선정과 그에 따른 설계도조차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에 들어간 것은 6개월후의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정치논리에 의해 강행됐다는 점에서 오늘의 부실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세계최초의 탄환열차인 일본의 신칸센(신간선)이나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프랑스의 테제베(TGV)가 착공에 앞선 준비기간이 7∼10년이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고속철 공사가 어렵고 안전을 우선한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경부고속철의 상업속도는 평균시속 2백20㎞(최고 2백80∼3백㎞)이다. 1편승에 평균 1천여명의 승객을 싣고 달리는 고속철에서 만일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고속철의 생명은 빠른 속도에 앞서 안전이 최우선이다. 이를 위해서는 튼튼한 시공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 운행중에는 철저한 점검이 뒤따라야 한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보다 지형이 나쁘고 지진으로 숱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의 경우이다. 일본이 신칸센을 개통한 것은 지난 64년 10월1일, 동경올림픽 개막을 10일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신칸센은 동경∼오사카(대판)간 5백15.4㎞를 3시간대에 주파, 일본의 기술을 상징하는 전기를 이룬 것이다. 신칸센이 안전성에서 TGV보다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지난 33년동안 단 한건의 인명사고가 없었다는 점이다.
○엄청난 비용 국민부담으로
이같은 관점에서 볼때 이번 WJE사의 보고는 장래의 대형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불행중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채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대형사업을 강행시켜 재시공비용으로 5천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추가비용을 발생시켜 상당부분을 국민들이 부담하게 됐다는 것과 이로 인해 공기가 3∼4년이나 늦어져 간접손실도 이에 못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는 부실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벌써부터 정부와 고속철도공단, 시공·설계·감리를 맡은 민간 단체간에는 책임을 둘러싸고 발빼기식 논쟁이 일고 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고속철 공사가 이처럼 부실하게 된것은 정부·공단·건설회사들의 합작품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더욱 큰 문제는 이번 공사에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건설업체들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건설 업체에 대해 국제적인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그래서 정말 이번에는 철저하게 책임의 경중을 가려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또 아무리 돈이 더 들어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후손들에 물려줄만한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다시금 「부실 공화국」의 오명을 써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