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勞使 상생의 조건

협력적 단체교섭 틀 조성

한국은 파업공화국인가. 지난 한해 동안 발생한 300건이 넘는 총분규 수를 올해는 7월에 훨씬 넘겨버린 통계를 본다면 아무리 낙관적인 사람이라도 이를 부정하기 어렵다. 전투적인 노사관계가 우리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여론의 비판도 예년과 다름없다. 이런 파업 수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직 미비한 교섭체제로 인해 수십여개의 사업장이 동시에 파업을 시작하는 산별교섭이다.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본격적인 진전이 이뤄진 산별교섭은 그러나 해당 사업장의 임금과 근로조건 향상에 주된 초점이 맞춰진 기업별 노조의 교섭관행을 깰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열어준 사건이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산별교섭을 시작한 금융이나 금속산업은 물론 올해 처음으로 산별교섭을 실시한 보건의료산업의 단체협약 내용에서도 산별 최저임금의 확립, 연대기금의 공론화, 고용확대와 임금격차 축소를 위한 주5일제 실시, 대규모 병원의 임금인상 자제 등 공공성이 크게 강화됐다. 이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산별협약 타결 이후 지속된 지부별 교섭난항, 특히 장기간 지속된 서울대병원지부의 파업으로 인해 산별교섭은 ‘유명무실’이라는 비판과 내부갈등을 겪게 된다. 서울대병원지부는 ‘산별협약은 최소기준을 정하는 협약이므로 일부 사항에 대해 지부협약보다 우선 효력을 갖는다’는 조항의 삭제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주5일제 도입에 따른 인력확충과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지부파업을 진행했다. 물론 서울대병원지부의 의견이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보건의료노조의 산별협약은 노조도 인정하듯이 첫 산별교섭의 무난한 타결을 위해 다소 미진한 부분이 있다. 특히 무급 생리휴가에 대한 수당보전에 신규직원이 제외되는 등 경기 침체시 나타나는 협약의 이중적용 경향도 나타났다. 이런 보건의료노조의 내부갈등을 통해 산별교섭이 해당 산업의 최저기준을 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해당 산업의 평균을 정하는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논란이 제기됐다. 산별교섭이 서울대병원지부의 의견처럼 최저수준만 정하고 지부 소속 기업의 지불능력에 따라 산별합의를 뛰어넘는 요구가 언제든지 가능하다면 교섭비용 감소와 근로자간 격차축소를 중시하는 산별교섭의 의미는 크게 퇴색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산별합의를 통해 정해진 사항을 무시하는 지부파업은 자제돼야만 한다. 본조의 협약내용이 불만족스러운가. 그렇다면 힘센 대기업지부일수록 산별본조의 조직역량과 정책개발을 도와 만족스러운 산별협약안이 나오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보건의료산업의 경우 중소병원 소속지부는 ‘산별교섭으로 살았다’고 생각하고 대규모 병원은 ‘스스로 하는 것보다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것이 산별교섭이다. 서울대병원지부 파업을 계기로 내년부터는 산별교섭을 할 이유가 없다는 사용자도 등장했다. 기업차원의 교섭을 선호하는 사측이 염두에 둬야 할 사안은 산별교섭의 ‘하향평준화’를 비판하고 현장 투쟁을 더 중시하는 노동계의 일부 입장과 바로 그 기업별 교섭에 대한 사용자의 선호가 맞아떨어져 지난 십여년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갈등적 노사관계가 지속돼왔다는 사실이다. 이번 여름의 교섭구조 변화로 잠깐 엿볼 수 있었던 책임감 있는 노동운동과 노사 자율교섭의 가능성이 높은 분규 수에 매몰돼 과소평가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조그만 불씨를 살려 조율되고 협력적인 단체교섭구조를 만들어가는 일은 노사정뿐 아니라 국민 일반의 관심과 감시가 요구된다. 이제 정말 ‘파업공화국’의 면모는 좀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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