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응 안이·수습 뒷북… 'AI 확산' 불렀다 서울선 '꿩 감염' 사실 일주일동안 몰라정부, 12일부터 재래시장서 생닭등 판매 제한키로닭고기 소비 급감등 '2003년 패닉' 재연 신경립기자 klsin@sed.co.kr 노희영기자 nevermind@sed.co.kr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이달 들어서만 경기도ㆍ경상북도ㆍ서울시ㆍ강원도 등 전국 방방곳곳에서 확인되는 등 제주도를 제외한 전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계에서는 우리나라에 AI가 풍토병처럼 고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쫓아가기'식 방역에 급급한 실정이다. 춘천ㆍ부산 등까지 AI가 발생하는 등 서울을 포함한 전국에 AI 바이러스가 만연하자 정부는 뒤늦게 9일 당정협의를 갖고 오는 12일부터 재래시장에서 생닭과 생오리의 판매 제한 등 대응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같은 대책은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뒷북 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도시 방역체계 허점 그대로 노출=지방의 닭ㆍ오리 농가에서 서울ㆍ대구 등의 대도시로 번진 이번 AI 사태는 대도시 방역체계의 허술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서울 광진구청에서 발생한 AI 바이러스는 지난 4월24일 성남 재래시장에서 사들인 꿩 2마리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내려졌다. 처음으로 꿩이 폐사한 것은 4월27일. 하지만 5월3일 4마리째 가금류가 죽기 전까지 광진구청은 AI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었다. 결국 신고가 접수되기까지 1주일 동안 AI 감염 조류가 서울 한복판에 방치돼 있었다는 사실이 서울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게다가 서울시가 예방 차원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어린이대공원, 과천 서울대공원의 가금류를 살처분하고 건국대 수의과학대 오리가 감염경로로 의심을 받으면서 시민들의 공포도 증폭됐다. 김창섭 농식품부 동물방역팀장은 "서울시와 광진구청이 역학적 연관은 없지만 많은 시민들이 살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의욕이 앞서서 살처분을 했다"며 "대도시의 방역대 설정은 시장ㆍ군수에게 일임했는데 경험이 없이 처음 일을 당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AI의 고착화 우려가 확산되는 마당에 정작 인구밀집지역인 대도시 방역 대책이 사실상 없었던 것이다. 정부는 대도시의 AI 대책을 보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발생 초기의 안이한 대응으로 AI 초기 진압에 실패한 정부가 또다시 대책 마련에 늑장을 부렸다는 질책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2003년 AI '패닉' 재연=정부의 사후적인 늑장 대응과 정부 간 혼선에 따른 불안감 확산으로 인해 지난달 발생 초기만 해도 차분하던 시장 분위기는 과거 AI가 처음으로 발생한 2003년의 혼란을 재연하기 시작했다. 농협하나로클럽에 따르면 양재ㆍ창동ㆍ고양ㆍ성남 등 4대 매장의 닭고기 매출액은 4월1일 당시 1,483만원에서 7일에는 3분의1 수준인 425만원으로 떨어졌다. 신세계 이마트의 한 관계자도 "AI 발생 이후 닭고기 가격은 거의 떨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살처분 등으로 닭 공급이 줄어든 한편 소비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인 홈에버에서는 7일부터 아예 생닭 판매를 중단하고 있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도 "2003년의 재연이라고 할 만큼 상황이 안 좋다"며 "지금으로서는 가장 시급한 문제가 소비 위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먹거리 파동은 가뜩이나 악화되는 내수에도 악재다. ◇토착화ㆍ인체감염 여부는=이번 AI와 관련해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계절병으로 알려졌던 AI가 동남아시아처럼 연중 고착화될 가능성과 인체 감염 여부다. 아직 이번 AI의 감염경로나 유전자 변이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아 이 같은 우려는 AI 장기화와 함께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장형관 전북대 교수는 "예년과 달리 확산 범위가 넓어지면서 토착화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바이러스는 끊임없이 변하고 변이를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필터를 만들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AI공포의 근원인 일반시민의 인체 감염 여부는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승철 삼성의료원 건강의학센터 교수는 "보통 사람이 보통 생활을 하면 절대로 감염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가령 대공원에서 조류를 관람했다고 AI에 감염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한편 당정협의에서 정부와 한나라당은 허가를 받지 않고 도축된 가금류의 유통을 막기 위해 대형 할인마트나 백화점 등을 제외한 방역 사각지대에 있는 재래시장 등에서 생닭과 생오리를 일반 소비자나 상인에게 팔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당정은 또 계란을 포함한 가축의 유통 상인 및 수송차량에 대한 등록제를 도입로 의견을 모았다. 이어 전국 식용 오리에 대한 AI 감염 여부 검사를 확대 실시하고 대도시 조류 사육시설과 판매시설에 대한 소독과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