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화보를 답습하거나 기법에 얽매이지 않고 정확한 사생(寫生)을 근거로 새로운 시각에서 사군자를 그렸습니다. 외형과 뼈대는 물론 사군자에 담겨있는 정신까지 그리려 애썼습니다." 사군자에 담겨있는 선비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작품을 해 온 홍익대 문봉선 교수가 15년간 전국을 돌며 보고 만지고 느낀 그대로를 화폭에 담은 사군자를 인사동 학고재에 걸었다. 중국에서 시작된 사군자는 조선에 이르면서 중국의 완벽성과 기교 위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를 표현한 한국화의 한 장르. 사군자 하면 진부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작가는 가장 한국적인 전통이 담겨있는 장르라고 여긴다. 작가는 90년대 초반 사군자를 관찰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전라남도 승주 선암사에서 매화향을 맡으며 수 년 동안 사생한 후 한지 위에 아크릴로 꽃을 그리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고, 안면도의 춘란과 제주도의 한란을 지켜보고는 다른 매화도에서는 볼 수 없는 난초의 잎파리까지 생생하게 그려냈다. 가을 서릿발에 황금빛 꽃을 내 놓는 국화는 어느 민가 담벼락에 서슴없이 핀 그대로를 옮겼고, 구례와 하동 섬진강변의 대나무를 보고 그린 작품에는 바람에 흩날리지만 굳은 의지까지 담았다. 전시장에는 그가 15년간 그린 사군자 중에서 골라 지난해 사군자 교본이자 해설서인 책 '새로 그린 매란국죽 1ㆍ2'에 실린 작품들을 소개한다. 전문 화가가 사군자만으로 전시회를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사군자 그리기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한 점씩 둘러보는 동안 마음은 어느새 고즈넉한 숲속을 거닌다. 전시는 3월 20일까지.(02)739-4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