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전체의 17%를 넘어서는 고령사회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통계청에 따르면 정확히 2년 남았다. 오는 2017년부터는 한국인 6명 중 1명이 노인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충분히 노후대비를 했는지, 또는 정부가 이들을 먹여 살릴 충분한 토양을 조성했는지 여부에 방점이 찍힌다. 답은 애석하게도 '아니다' 쪽으로 기운다.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언젠가는 고갈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고령사회에 대한 경고음만 울리고 있다.
결국 민간을 중심으로 시장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고령사회가 한국 사회에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보험업계에서 "한국형 '캐치업 폴리시(catch-up policy)'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결국 시장과 정부의 협업을 통한 사적연금 활성화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노후준비 안 돼 있는 한국=우리 정부와 가계의 고령화 대비 수준은 참담한 형편이다.
우선 우리 국민의 퇴직연금 가입률(18.8%)과 개인연금 가입률(12.2%)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세대별로 살펴보면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보험연구원이 지난 201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퇴직을 눈앞에 둔 50대 가운데 '노후준비 정도가 괜찮다'고 답한 비율은 10.1%에 불과하다. 그나마 50대는 양호하다는 점에서 한숨은 깊어진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가계금융복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대의 빈곤율은 13%이며 60대가 되면 41.1%로 3배 이상 치솟는다. 65세 이상은 무려 48.5%에 달한다.
정부의 준비상태는 한 번 더 고개를 떨구게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8%에 불과하지만 2060년이 되면 29%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고등학생이 50년 뒤 노인이 될 시기에 정부의 사회복지지출 부담이 GDP 기준으로 3배 이상 증가한다는 얘기다.
국가채무에 드리워진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02년에 GDP 대비 17.6%였으나 지난해 말에는 35.1%로 상승했다. 고령사회 대비와 관련해 정부만을 바라봐서는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사적연금 활성화가 해답=한국과 달리 선진국들은 고령사회의 파고를 잘 넘어서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이다. 미국이 현재 시행하고 있는 연금 활성화 대책인 캐치업 폴리시는 50세 이상 국민의 연금불입액에 대해 추가적인 소득공제를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50세 이상이 되면 개인퇴직계좌(IRA)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의 소득공제 한도가 각각 1,000달러와 5,500달러씩 늘어나도록 설계, 사적연금 가입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이 같은 제도를 바탕으로 공적연금-기업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의 3중 연금체계를 확실히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퇴직연금 가입률과 개인연금 가입률도 각각 32.8%와 24.7%로 한국의 2배 수준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있는 세제혜택마저 줄이는 등 오히려 관련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 정부는 올 연말정산부터 세액공제를 도입해 연금 가입자들의 세제혜택을 줄였다. 연금상품 가입에 대한 수요까지 줄어든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정부는 부랴부랴 퇴직연금 추가 납입액에 대해 연간 300만원 한도의 추가 세액공제를 발표했지만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8.1%인 7조2,000억원 규모에 불과한 땜질 처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연금 수급기간 길수록 더 많은 혜택 줘야"=따라서 근로자의 가입률이 높은 연금저축에 대한 세제혜택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세청은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을 합산한 금액 중 연 400만원 한도 내에서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며 퇴직연금에 대해서는 연 300만원 한도 내에서 추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연금저축에는 이 같은 혜택이 없다. 퇴직연금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를 연금저축에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기대수명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므로 연금 수급기간이 장기화될수록 더욱 많은 혜택을 부여하도록 세제 설계가 필요하다"며 "이 같은 제도도입이 현실화될 경우 자녀양육과 부모봉양 등으로 노후대비 여력이 없던 중장년층의 노후대비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사적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저소득층을 위한 대책도 요구된다. 실제 소득 하위 20%의 저소득층은 노후대비용으로 전용 가능한 '기타지출' 항목이 연간 114만원에 불과해 노후대비에 힘을 쓸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저소득층이 사적연금 등에 가입할 경우 독일과 같이 일정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해법으로 제시된다.
보험업계 또한 연금과 관련한 숨은 수요를 찾기 위해 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이미 영국 등 해외에서 일반화돼 있는 '건강상태에 따른 연금액 조정 상품' 출시 등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실제 해외에서는 종신연금 수령 시 건강상태에 따라 연금액을 달리해 계약자의 상태에 맞는 맞춤형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해외 주요국은 개인 및 퇴직연금 납입금의 소득공제 한도를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설정하고 있다"며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미래 재정부담이나 국민연금의 건전성 악화, 퇴직 및 개인연금의 미약한 소득대체율을 감안하면 개인연금자산 축적 유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