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 짜리 버거 원가만 700원 나머지 300원서 인건비·콜라값 나가” <br>“전세집 살고 어머니·형제 가난하지만 그들도 장학금 기탁 자랑스러워 해”
| 이영철사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종업원들이 갓 구워낸 버거를 들어 보이고 있다. 영철버거는 안암점에서만 하루 평균 1,500개의 버거를 팔고 있다. |
|
기자가 찾은 6평 남짓한 고대앞 영철스트리트버거 본점에는 의자가 한 개도 없었다.
점포는 문도 없이 그냥 인도로 트여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학생들은 쉴새 없이 들락이면서 ‘영철스트리트버거’와 새로 출시된 1,500원 짜리 ‘영철클래식버거’를 사 먹고 있었다.
점포를 처음 보는 순간 ‘한 여름, 한 겨울에는 덥고, 추워서 어떻게 장사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점포에서는 도저히 취재가 안 될 것 같아 가까운 찻집으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시작했다.
-매일 이렇게 늦게 출근 하시나요.
“아니오. 예전에는 일찍 나왔는데 공사판에서 노동 할 때 다친 허리가 ‘에스’(S)자로 휘어져 얼마 전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등뼈에 철심을 박았고, 병원에서는 쉬라고 하는데 내가 자리를 비우면 학생들이 궁금해 해서 오후에라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사장님의 책 ‘내가 굽는 것은 희망이고, 파는 것은 행복입니다’를 읽었더니 가맹점을 내줄 때 희망자들을 까다롭게 선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맹점이 2년 만에 40개 까지 늘어났다고 하던데 가맹점들의 장사는 잘되고 있나요.
“지금은 대체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맹점은 내주려고 해서 내준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하겠다고 덤벼든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말렸습니다. 취약한 상권에서 한정된 고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점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맹점 확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보았더니 서문에 ‘성공한 이영철이 아닌 실패와 좌절 속에서 방황했던 이영철의 진솔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회를 나누고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책이 나온 후 반응은 어떤가요.
“초판이 다 나가고 2쇄를 찍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세는 얼마나 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책을 팔아서 버는 돈은 장학사업에 쓸 예정입니다”
-11살에 가구공장에 처음 취직을 해서 가구를 나르고 대패질 하는 일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찹쌀떡 장사를 하던 시절에는 술취한 아저씨가 집으로 데려가 밥을 차려준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책에 쓰셨더군요. 어떻습니까. 오늘 이순간까지 이사장님이 겪어온 세상은 살아볼 만큼 따뜻하던가요. 아니면 각박하던가요.
“저는 내가 살아온 삶이 너무 밑바닥이었기 때문에 고생은 당연한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정도의 구박을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 했을 겁니다”
그는 자신이 처했던 상황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이사장은 자신이 겪은 구박과 냉대를 담담히 말했지만, 그는 책에서 ‘어느 집에 탕수육 배달을 갔다가 너무도 단란하고 화목한 분위기에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고 쓴 적이 있다.
-첫딸이 몇살이죠.
“중학교 1학년 입니다”
-첫딸 낳을 때 옆집 아주머니에게 빌렸던 돈 40만원을 최근에야 갚았다고 들었습니다. 또무작정 상경해서 함께 고생하던 형님께서는 중국집을 차리고 난 다음 자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사장님은 아직 자기집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돈 쓸 곳이 많은 분이 고대생을 위해 매년 2,000만원씩 장학금을 기탁하는 이유를 쉽게 납득할 수 없습니다. 어떤 생각에서 장학금을 내기로 하셨나요.
“저는 27년을 객지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때문에 나를 고용한 사람들은 대체로 나를 좋아했습니다. 다들 ‘한 몫 떼어줄 테니 함께 일하자”고 했지만 약속을 지킨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그 들도 가난한 사람들이어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형도 한 중국집에서 25년을 일 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남들에게 그렇게 당해온 만큼 나는 돈을 벌어 베풀고 싶습니다.
주위에서는 ‘고려대학교에 장학금 낼 돈 있으면 어머니나 편히 모시라’고 합니다.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형제들도 힘을 얻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여동생의 빚 보증을 잘못 서 옥탑방에서 살고 계시지만 제가 고대에 장학금을 기탁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십니다”
-고대생에게 처음 수박 한 통을 팔면서 배우지 못한 열등감 때문에 학생이 우러러 보여 얼굴을 마주보지도 못했다고 했는데 요새는 고대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사람들 중에 한 분이 되셨습니다. 요새도 고대생을 보면 그렇게 부끄러우세요.
“내가 배움이 짧아서인지 저는 그들이 좋습니다. 저는 그들을 통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내 동생들 같습니다. 그들은 단지 햄버거를 팔아주는 학생이 아니라 내가 부족한 걸 일깨워 주는 충고자들이기도 합니다”
-혹시 고대생들에 대한 애정과 동경이 정직한 장사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건 아닌가요.
“네. 그렇습니다. 만약 여기서 자리를 못 잡았으면 저는 지금도 허덕이면서 살고 있을 겁니다. 나는 정을 못 받아서 누구든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면 간ㆍ쓸개를 다 내줍니다. 학생들이 아무것도 아닌 나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나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사장님께서는 손수 만든 버거로 3년간 매 끼니를 때우다시피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학생들이 영철버거가 믿을 만 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는데 3년 동안 버거만 드시면서 지겹지는 않았나요.
“지금도 먹고 있는 걸요. 학생들도 ‘안 질리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점을 하면서 밥을 챙겨먹는다는게 쑥쓰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든 것을 내가 먹으면 고객들도 나를 믿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버거속으로 국산 암퇘지 등심과 청양 고추만 씁니다”
-저는 사장님이 버거로 끼니를 때우신 것이 첫번째 마케팅이었고, 두번째는 월드컵때 우리나라가 승리를 거둘 때 마다 공짜 버거를 수 백개 씩 돌린게 홍보를 극대화 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장사가 부쩍 잘됐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장사가 잘 될 거라고 계산해서 한 행동은 아니었습니다. 고대는 해마다 축제 때면 학생들이 기차놀이를 하면서 교문 앞 점포 주인들에게 음식을 달라고 합니다. 제가 축제 때 기간을 정해 놓고 1,000개를 공짜로 준다고 했는데 연ㆍ고대생들이 많이 와서 먹고들 갔습니다. 저는 그 때가 가장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나눠줄 때면 고생과 괴로움을 잊어버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1000원 짜리 버거 하나를 팔면 생산 원가만 700원이 들어가고 나머지 300원에서 인건비도 나가고 콜라 값도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사장님은 가맹점을 하려고 찾아온 사람이 1,000원 짜리 하나 팔면 500원은 남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심보로 어떻게 장사를 하냐”고 되묻는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언제까지나 1000원이라는 싼 값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네 그게 사실 고민입니다. 그래서 지난 9월 새로 개발한 영철클래식버거는 1,500원을 받고 있습니다. 영철스트리트버거는 언제까지가 될 지 모르겠지만 1,000원을 유지할 생각입니다”
-이사장님이 운영하는 점포는 이미 유명해져 일정 갯수 이상의 버거가 팔려 규모의 경제를 시현하고 있지만 새로 가맹점을 차리는 분들에게는 손익을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남들에게 가맹점을 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큰 돈이 안들어서 그런지 영철버거의 창업을 쉽게 생각합니다. 또 실제로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은 종이 한 장 차이 입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창업해서 돈 500만원을 번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씨앗을 뿌려서 나무가 되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무시하고 열매를 딸 생각부터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제가 2003년 방송에 나온 후로 가맹점을 내겠다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들이 요구하는대로 계약서만 써줬으면 저는 20억원 이상을 벌었을 겁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대부분 설득해서 돌려보냈습니다. 저는 아직도 가맹점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장사가 안 된다고 나를 원망할 거 같으면 애초에 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제가 안 좋다보니 어려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얘기를 좀 해주세요.
“정보화시대라고 하는데 저는 휴대폰 문자 하나 보낼 줄 모르고, 컴퓨터도 제대로 다룰 줄 모릅니다. 그래도 돈을 벌고 있지요. 순리대로 살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기고 난 다음에 걷고, 걷고 난 다음에야 뜁니다. 순리대로 꾸준히 노력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모두들 힘든 일을 싫어한다는 겁니다. 직원을 뽑아야 하는데 3개월 째 못 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지금 장사를 하고 있는 건물이 12월 10일 재건축에 들어가는데 새 점포를 구하지 못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 상권의 권리금 너무 비싸서 1,000원 짜리 버거로 수익을 내는 건 참 버거운 일”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기자의 마음에 꽂혀 오랫 동안 여운을 남긴 한 마디는 “올 해도 장학금 2,000만원을 기탁하려면 열심히 벌어야 되는데 참 큰 일이야…”라는 혼잣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