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산업은 어느 때보다 업권별 차별화가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은 저금리 및 가계부채 부담 등에 따라 올해와 같은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보험업계와 카드업계는 저금리 기조에 맞서 비용절감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핀테크(금융기술)로 상징되는 금융, 정보기술(IT)의 융복합은 금융산업의 대응전략을 가늠 지을 또 다른 변수다. 정부는 핀테크 등 새로운 금융실험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금융시장 격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금융사들도 새로운 도전을 위한 채비를 끝마쳤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엎을 변수가 있다. 바로 '대손충당금'이다. 전문가들은 올 경기가 하강 국면에 놓일 것이 확실시되고, 동부건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에서 볼 수 있듯이 건설을 비롯한 한계 업종들의 줄도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뿐만 아니다. 부동산 경기와 맞물려 있는 가계 부채 문제가 또 다른 화두가 될 것이고 여기서 발생할 부실과 충당금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관심이다. 결국 대규모 대손충당금 적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올 한해 금융사들의 장사를 가늠할 핵심 잣대임을 예상하게 한다.
은행-가계부채·기업 도산·핀테크에 생존 달려
금융산업의 맏형 격인 은행산업의 올 전망은 다층적이다. 은행산업은 성장성과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금리 인하 및 가계부채 취약 가능성은 건전성 관리의 필요성을 높였다. 정부의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은 가계부채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리며 은행 수익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부동산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선다면 건전성을 해치는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은 금리가 워낙 낮아 버티고 있지만 경기 하강이 계속될 경우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가계 부채 문제가 금융권 건전성을 침식하는 가장 큰 독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은행산업의 성장성은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국내 금융산업에서 은행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8년 말 70.7%를 기록했던 국내 금융산업에서의 은행 비중(총자산 기준)은 2013년 말 현재 61.1%로 줄었다.
충당금 이슈도 부담이다. 대기업 구조조정이 일단락되면서 지난해 은행 순이익은 기대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벌써 동부하이텍 매각이 무산되면서 동부그룹의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부하이텍 매각무산은 동부건설 지원 불능으로 이어져 시중은행들의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및 엔저 여파로 내년 대기업 경기는 더욱 안 좋아질 가능성이 높다"며 "대손충당금이 지난해 대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장동력을 둘러싼 은행 간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터넷은행, 핀테크 육성, 복합점포 활성화 등은 하나같이 은행들의 미래 생존 여부를 좌지우지할 빅이슈다. 인터넷은행의 첫 설립자가 누가 될지 초미의 관심사다. 여기에 우리은행 민영화 작업은 은행산업 지형도를 뒤바꿀 잠재 변수다.
금융지주 고위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은 비단 새로운 포맷의 금융사 탄생에 그치지 않고 금융소비자 패턴을 뒤바꿀 변곡점이 될 수 있다"며 "새로운 실험이 수익성에 미칠 영향이 미미하지만 씨앗뿌리기 차원에서라도 강력한 드라이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보험-대규모 인력감축 등 비용과의 전쟁
보험산업은 비용과의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메리츠화재는 임원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에 앞서 삼성·한화·교보생명 등을 포함한 많은 보험사들이 인력감축을 실시했다. 추가적인 구조조정 및 하위권 보험사들의 구조조정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형 보험사들은 연초부터 독립법인대리점(GA) 설립을 예고하고 있다. 기존 보험사 인력들의 인력 구조조정은 자연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다.
자동차보험과 저축성보험을 둘러싼 손보사·생보사 간 경쟁격화도 예상된다. 특히 다이렉트 자보시장은 제1 전장이다. 현대해상은 지난해 말 온라인 전업사인 하이카다이렉트에 대한 흡수통합을 발표했다. 여기에 LIG손보는 KB금융그룹에 편입되면서 2만여 캡티브마켓을 얻게 됐다. 이에 따라 삼성·동부화재 간 쌍두경쟁 양상이었던 다이렉트 자보시장은 상위권 손보사 간의 치고받기 싸움으로 확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카드-3년만에 원가 재산정… 또 한번의 수수료 전쟁
카드산업은 올해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주된 먹거리인 카드결제 수수료가 인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뼈아프다. 카드사들은 2012년 가맹점 수수료 체계가 도입된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수수료 원가를 재산정해야 한다. 금리 인하에 따른 조달비용 축소 및 밴사 수수료 절감효과까지 감안하면 수수료 인하는 기정사실이 됐다.
카드사들은 줄어든 수수료 수입을 상쇄하기 위해 대출사업 비중을 늘리는 전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시급한 현안인 현대차와의 복합할부 분쟁은 상반기 내내 업계의 경영을 괴롭힐 것으로 보인다. BC카드에 이어 삼성카드와의 수수료 분쟁은 '삼성 대 현대'라는 자존심 대결까지 걸려 있어 예상보다 큰 싸움이 될 수 있다.
스타트라인을 출발한 알리페이·애플페이 등 신종 결제수단과의 경쟁에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도 관심사다. 모두 수익성에는 부정적인 것들이어서 카드산업의 수익성은 올해도 지지부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민금융-상호금융간 계속되는 생존 싸움
저축은행업계 기상도는 구름이 잔뜩 낀 가운데 햇살이 새어 나오는 형국이다. 예대마진 축소 및 부동산규제 완화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이탈 등에 따라 성장성에는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저축은행 사태로 촉발된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건전성과 수익성이 반등할 여건이 만들어진 점은 긍정적이다. 2012년 1·4분기 말 현재 21.8%에 달했던 저축은행 연체율은 올 1·4분기 말 현재 17.9%로 개선됐다. SBI저축은행 등은 힘겨운 터널에서 벗어나 흑자 궤도에 올라설 것으로 보이고 대부업체가 인수한 OK저축은행과 친애저축은행·웰컴저축은행 등도 예상보다 선전하고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업계의 총자산은 늘어났지만 부실 가능성이 높은 신용대출 자산이 늘어난 점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협이나 신협 등의 상호금융은 그리 여건이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 말 정부가 상호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비주택(토지 등) 담보 대출을 제한하면서 갈수록 먹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상호금융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