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이훈평 의원은 12일, 지난 2000년 총선당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돈세탁 의혹을 받고 있는 무기중개상 김영완씨로부터 `현대가 100억원을 총선자금으로 준비했다`는 제안을 받아 이를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나 받지 말 것을 지시받고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그러나 권 전 고문이“당 사정이 어렵다”며 김영완씨에게 부탁해 김씨에게서 10억원을 빌렸다고 밝혔다.
검찰에 체포된 권 전 고문의 측근인 이 의원은 이날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이 의원의 발언이 사실일 경우 김 전 대통령은 현대의 총선자금 제공의사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권 고문 비자금 파문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조사 등 일파만파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김 전대통령 측은 이 의원의 발언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며 강력히 부인했다. 김영완씨는 현대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준 것으로 알려진 150억원의 돈세탁을 담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훈평 의원은 이날 “총선 당시 권 전고문은 김영완에게서 `현대로부터 100억원이 준비됐다`는 말을 듣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김 전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돈은 받으면 안되고 공식적으로 당에 들어온 돈으로 하거나 안되면 빌려서 하라`는 말을 듣고 김영완의 제의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의원은 “그러나 권 고문은 김영완에게 `당 사정이 어려우니까 10억원만 빌려달라`고 요청해 10억원을 빌렸다”면서 “총선때 다른 곳에서도 돈을 빌렸지만 현재 갚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당내 다른 사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오늘 오전 권 전 고문을 만나고 온 변호사로부터 전해들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DJ, 알고 있었을까 = 권 전 고문이 김 전 대통령에게 현대 비자금 수수 여부에 대해 승인을 요청했다고 주장한 부분은 재임기간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고 자부해온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은 이날 “이 의원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런 일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당의 간부들에게 합법적이고 투명한 당 재정운용을 거듭 당부한 일은 있었지만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의 이같은 언급은 김 전 대통령을 면담한 이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완 자금, 총선 유입은 사실 =권 전 고문이 김영완씨로부터 10억원을 빌렸다는 이 의원의 주장은 권 전 고문에 대해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하려는 검찰을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지나 자금세탁혐의를 받고 있는 김영완씨로부터 총선을 앞두고 10억원을 빌렸다는 점을 스스로 시인한 것이어서 향후 정치권에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권 전 고문이 김씨로부터 빌렸다고 주장하는 자금의 성격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김씨 돈이 정치권으로 유입된 사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금전 차용이라는 권 전고문측 주장에도 불구, 당시 권 전 고문이 공식적인 선거총책의 역할을 맡지도 않은 상황에서 돈을 빌렸고 차용증도 없었다는 점에서 김씨와 구 여권과의 관계를 비롯해 돈의 성격도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386 개혁세대 집중지원설 = 이훈평 의원은 수도권 지역의 386 후보들에게 권 전 고문이 선거자금을 집중 지원했다는 주/장과 관련, “당에서 접전지역 등을 선별해서 지원하는 것은 예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라며 “필요하면 권 전 고문이 검찰에서 밝힐 것”이라고 말해 검찰 수사 진전여하에 따라서는 정치권에 상당한 파문을 몰고 올 전망이다. 돈을 받은 의원들의 경우 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상의 공소시효가 만료돼 당장 사법처리 대상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의식기자, 임동석기자 miracl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