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박흥진의 할리우드통신] 김지미 회고전서 느낀 한국영화 체취

지난달 열린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운 좋게도 한국 영화계의 산 증인이자 고전이라 부를 감독과 배우들을 만났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 영화계의 대부 정창화 감독의 초대로 김지미 회고전에 참석했다. 회고전에 가기 위해 정 감독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웬 키 큰 미남 신사가 서 있었다. 그는 '단종 애사'를 비롯해 생애 총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과거 한국 스크린을 주름 잡던 윤일봉 씨였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일 뿐 그는 여전히 잘 생겼다. 김지미 회고전 연회장에 들어서니 저만치 남궁원 씨와 윤양하 씨가 서 있었다. 특히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 불린 남 씨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옛 모습 그대로였다. 이들 곁에 윤일봉 씨가 서니 '올드 미남 삼총사'의 자태에서 흘러간 한국 영화사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하지만 회고전에서는 한국의 젊은 배우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정감독은 "몇 년 전 김승호 회고전 때도 마찬가지였다"며 과거를 외면하는 젊은 세대를 안타까워했다. 회고전 후 정 감독과 그의 동료들인 김수용 및 김기덕 감독 등과 뒤풀이가 이어졌다. 김수용 씨는 지난 60~70년대 '안개'를 비롯해 생애 총 100여 편의 영화를 만든 문예영화의 장인. 지난 1986년 영화 '허튼 소리'가 검열당국에 의해 난도질당하는데 항의, 메가폰을 던져 버렸다. 셋 중 막내인 김기덕 씨('나쁜 남자'의 작은 김기덕 아님)는 60년대 신성일과 엄앵란이 공연한 '가정 교사'와 '맨발의 청춘' 등을 만든 청춘물 대표 감독이다. 김수용 씨는 거침 없는 달변으로 대화를 리드했다. 어찌나 말을 잘 하고 위트와 유머가 있는지 웬만한 코미디언은 뺨 칠 정도였다. 김 감독은 자신이 구상중인 마지막 작품에 대해서도 말했다. 기구한 운명으로 헤어졌다 다시 만나나 비극적 종말을 맞는 모자와 부녀 얘기 두 가지로 모두 라스트 신은 화면에 피가 뿌려질 것이라고.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대표작인 '맨발의 청춘'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깡패와 외교관 딸의 비련을 그린 영화에서 빈부차가 눈에 띄게 묘사됐다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여러 차례 가위질을 당했다는 것. 두 감독의 옛날 이야기 속에 빠져 있는 사이 시간은 어느 새 새벽 2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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