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위장결혼 누명 벗어 "정의는 살아있다"

'결혼이민피해여성 헌소 승소' 축하기념대회<br>여성, 돈에 눈먼 남편 탓에 마사지 업소 팔려<br>위장결혼 휘말렸다 헌법소원으로 강제추방 면해<br>"잘못된 수사 관행에 철퇴"… 참석자들 만세삼창

한 결혼이민여성의 위장결혼 누명을 벗게 한 헌법재판소 결정을 계기로 결혼이민여성들이 24일 수사 기관의 신중한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이제서야 희망을 찾았습니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서울중국인교회 지하 예배당에서 '결혼이민피해여성 헌법소원 승소' 축하기념대회가 열렸다. 단상 위에 오른 왕모(46)씨는 "위장이 아닌 진짜 결혼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과 검찰, 법무부 어느 곳 하나 귀담아듣지 않았다"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2년 가까이 자신을 불법 체류자로 만든 한국사회에 대한 서러움과 원망이 가득할 법도 했지만 "변호사와 헌법재판소에 고맙다"고 했다. 중국 산둥(山東)성에 살던 왕씨가 한국 땅을 밟은 것은 2007년 10월 6일. 국제결혼 알선업자 소개로 만난 김모(51)씨를 따라 대전으로 온 왕씨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단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입국 이튿날 왕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 김씨가 다짜고짜 "더러워 같이 살 수 없다"며 왕씨를 인근 마사지업소로 내쫓았다. 마사지업소에서 일한 지 며칠 만에 왕씨는 자신이 위장결혼의 희생양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편 김씨가 "중국 여성을 데려와 업소로 보내주면 매달 100만원씩 주겠다"는 업주의 제안을 받고 왕씨를 이용한 것이다. 혼인신고도 남편 김씨가 6개월 전에 이미 마친 상태였다. 열흘 뒤 마사지업소를 나온 왕씨는 서울중국인교회를 찾아 사정을 말하고 교회의 도움으로 외국인등록증(체류기간 1년)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왕씨는 위장결혼 가담 혐의를 뒤집어쓰게 됐다. 경찰에 붙잡힌 남편 김씨와 알선업자가 "위장결혼이 맞다"고 시인한 것. 검찰도 위장결혼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2008년 9월 왕씨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불법체류자로 전락해 추방위기에 놓인 왕씨는 같은 해 11월 서울중국인교회의 도움으로 헌법재판소에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1년10개월 만인 지난달 30일 "수사와 판단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기소유예처분을 한 것은 헌법상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왕씨는 강제추방을 면하게 됐다. 왕씨는 "정신적 충격으로 우울증까지 생기기도 했지만 정의는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결혼이민여성들은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돌아가며 낭독했다. "1960, 70년대 한국의 젊은 여성들도 병든 아버지와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일본 미국 등으로 결혼이민을 갔습니다. 중국 여성이 나의 딸, 동생, 누나였다면 '진짜 결혼으로 왔다'는 눈물 어린 호소를 외면했을까요." "헌재의 공정한 판결이 이 여성의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 정의의 승리이자 대한민국 양심의 승리입니다." 참석자들 사이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그간 법적 자문을 맡아왔던 법무법인 정세의 정대화(47) 변호사는 "처음 해보는 소송이라 막막했지만 여러분의 도움으로 꿋꿋이 싸워 이길 수 있었다"며 "헌재의 결정은 잘못된 수사 관행에 철퇴를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국인교회 최황규(47) 목사는 "위장결혼인 줄 모르고 입국했다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사람이 수백명"이라며 "헌재 결정을 계기로 결혼이민여성 본인의 혼인 진정성이 인정되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 안산시 한 공장 숙소에서 지내며 휴대폰 조립 일을 하고 있는 왕씨는 "누명을 벗었으니 이제 새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축하 행사는 결혼이민여성들의 만세삼창과 구호제창으로 끝을 맺었다. "한 사람의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人的生命是 比天寶貴)."/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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