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경영과 과감한 도전으로 초우량 LG를 만들겠습니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난 95년 1월. 구본무 회장이 취임하면서 밝힌 일성이다. 그룹의 이름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꿨으며 CEO 진용도 새롭게 구성했다. 창업원로들은 신세대의 활약을 기대하며 자연스럽게 일선에서 퇴진했다. 재계의 이목을 끌었던 LG의 세대교체는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운 탈각’의 과정을 거쳐 새 아침을 맞았다. 경영 전면에 등장한 신규 세대가 유독 강조한 것은 ‘정도경영’. 그룹 창립 50주년인 97년 3월 LG는 ‘이사회 중심의 선진국형 책임경영 체제’로 전환한다고 공표했다. 무소불위의 오너중심 경영시스템에서 합리적 견제와 합의가 중시되는 이사회를 경영의 핵심 지배기구로 작동시키겠다는 것. 당시 재계 주변에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구 회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이야’ 하는 정도의 반응이 나왔을 정도다. 10년이 지난 지금 LG가 새롭게 길을 연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경영시스템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신사업을 향한 LG의 접근 노력은 다양하고 입체적이었다. 개인휴대통신(PCS)ㆍLCDㆍ민자발전ㆍ위성방송ㆍ멀티미디어 등은 구본무 회장 체제 이후 그룹이 새롭게 펼쳐가고 있는 첨단 비즈니스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LCD. 이 품목은 자본ㆍ기술ㆍ시장의 3박자가 모두 일치할 때 접근을 허용하는 초대형 프로젝트 사업이다. 90년부터 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본격적으로 메인 무대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95년. 그해 9월1일 구미공장에 TFT-LCD 공장을 건설, 노트북 PC용 9.5인치와 10.4인치를 각각 월 4만개, 10만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4월에는 2차 생산라인을 준공, 노트북용 LCD 전품목 생산체제를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시장에 LG의 이름을 각인시키기까지는 많은 탈각이 필요했다. 국가 외환위기 체제가 한창 지난 98년 3월 국내 단일기업 사상 최대인 16억달러 규모의 외자유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상대는 필립스. 이후 1년5개월 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