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토요 Watch] 고부가 창업 나선 중장년

은퇴후 치킨집? NO!

제2 저커버그·잡스는 청년들만의 꿈 아니다

막연한 성공에 기대지 않고 노하우 쌓아 IT 분야 도전

분야별로 전문가 힘합칠 땐 시너지 효과 커 성공률 쑥쑥

청년들에 치우친 지원 정책 40·50대 창업자로 확대해야




지난 2012년 온열 마스크팩 등을 개발하며 기능성 화장품 전문기업 피부다움을 설립한 이영경(45) 대표는 청년창업과 중장년창업을 동시에 경험한 기업가다. 10여년간 증권사·투자자문사 등에서 근무하며 벤처기업 투자전문가로 일했던 이 대표는 2008년 '투자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영해보자'는 생각으로 검색엔진 소프트웨어 개발기업을 차렸다.

서울대 출신의 개발자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하고 외국계 기업 출신의 마케터까지 채용하며 이 대표의 첫 사업은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기술이나 마케팅에는 문외한이었던 그는 회사 돈을 물 쓰듯 하는 고액연봉 직원들에게 휘둘렸다. 회사의 재정상황은 빠르게 악화되면서 2010년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뼈아픈 경험을 통해 이 대표는 자신이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업에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부 온도에 반응하는 온열 마스크팩 기술은 그가 2년여간 특허와 논문을 뒤지며 직접 개발한 것이다. 기술 개발부터 시제품 제작, 제조기계 개발까지 이제는 이 대표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는 "불과 6년 전 내가 했던 사업은 막연한 성공만 꿈꾸는 '사장놀이'에 그쳤지만 지금은 실패하지 않기 위한 디딤돌을 하나씩 세우고 차근차근 밟아가는 '진짜 사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며 "경력과 연륜이 쌓인 중장년 창업가들이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제대로 사업을 한다면 이 역시 창조경제의 주춧돌이 될 수 있는 만큼 중장년 창업자들을 끌어주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경력·연륜 바탕 성공률 높여=중장년 창업가들은 청년창업에는 도전정신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중장년 창업에 대해서는 실패 부담, 안전, 노후 등의 수식어가 붙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열정만으로 뛰어드는 것이 도전이 아니라 오랜 경력과 연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 오히려 '진짜 도전'이라는 것.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김기사'를 운영하는 록앤올의 박종환(43) 공동대표는 "10여년간 정보기술(IT)기업에 몸담았고 한 코스닥업체에서 위치기반 서비스 담당 임원을 맡기도 했는데 이 경험이 없었으면 4년 전 절대 창업을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기술과 시장을 보는 눈이 있어도 성공하기 힘든 게 창업인데 창업 관련 분야의 오랜 경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금융업계에 몸담았을 때 쌓은 네트워크를 통해 그의 열정을 높이 산 엔젤투자자를 만나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사업의 실패와 성공을 수도 없이 경험한 주변의 지인들은 늘 이 대표의 멘토를 자처한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마다 조언을 구할 만한 지인들이 있다는 점은 이 대표가 꼽는 '중장년 창업의 매력 포인트'다.


물론 지난해 부도를 낸 자영업자 가운데 50대가 2명 중 1명꼴이라는 냉혹한 통계가 말해주듯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없는 생계형 창업의 결말은 참담하다. 그러나 기술력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이 틈새시장을 찾아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세수확대는 물론 복지비용 절감으로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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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중소기업학회장은 "712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가 모두 재취업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이들 중 일부라도 경험과 기술을 살려 틈새창업에 성공한다면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며 "자금지원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낮춰주는 제도적 변화를 통해 중장년층의 기업가정신을 키워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장년도 청년처럼 힘 합쳐야"=경력과 네트워크를 갖춘 중장년 창업가들이 힘을 합치면 실패 부담은 줄어드는 반면 시너지는 더 커진다. IT를 접목한 신개념 운동기구 '스마트짐보드'를 개발한 허브앤스포크의 김일겸(51) 대표는 "중장년 창업자들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힘을 합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50대 IT 전문가 2명과 의기투합해 2011년 허브앤스포크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젊은 창업자들은 창의력이 있고 과감하지만 타협과 포용에는 약하다"며 "중장년 창업자들이 모이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것이기 때문에 쉽게 서로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어 시너지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장년 창업자들이 공동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네트워크의 장을 만들어준다면 마케팅·기술·재무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창업할 수 있어 성공 확률도 높아질 것"이라고 아이디어를 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중장년층의 공동창업을 장려하고 있다. 김주미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장년층은 오랜 경력으로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 공동창업을 할 때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싱가포르의 경우 경력자들이 공동창업을 하면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데 우리 정부는 오히려 1인 창조기업에 더 많은 지원을 해주고 있어 전문가 공동의 기술창업보다 소상공인 창업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장년창업도 지원 확대 필요=청년창업에 대한 지원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과 달리 중장년창업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은 늘 문제로 꼽힌다. 특히 초기 창업기업지원제도의 상당 부분은 지원 대상을 '만 39세' 이하로 한정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창업지원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올해 만 39세 미만 청년 창업자에게는 △청년 전용 창업자금(2,000억원) △청년창업사관학교(260억원) 등 2,000억원 이상의 창업지원예산이 책정됐다. 반면 만 4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창업지원금은 시니어창업 지원에 소요될 21억원이 전부다. 중기청 산하 기관과 각 지방자치단체 창업지원제도까지 합치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2012년 온라인 숙박중개 벤처기업 '코자자'를 창업한 조산구(50) 대표는 "창업 당시 투자를 받으려고 창업지원기관들을 찾아다녔지만 여기저기서 나이를 물었다"며 "그나마 시니어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청년도 아니고 시니어에 속하는 것도 어정쩡한 40대 초반 창업자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다행히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우선 시니어창업 지원제도를 관할하는 기관이 올해부터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창업진흥원으로 바뀌었다. 그간 자영업을 관할하는 소상공인진흥원이 시니어창업 지원에 나서면서 기술과 경험을 살린 고부가가치창업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장년 창업자들도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는 맞춤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청년창업사관학교의 사업 대상을 청년으로 할 게 아니라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중장년층으로도 확대한다면 단기간 내에 성과도 내고 네트워킹 효과도 클 것"이라며 "창업이 제대로 되려면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야 하는데 연령별로 구분된 지금의 지원 방식은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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