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이 남북 비밀접촉 내용을 추가로 공개하고 녹취록까지 공개할 수 있다고 압박한 데는 이명박 정부를 곤경에 빠트리고 남남(南南)갈등을 부추기겠다는 의도가 짙다.
상황에 따라서는 남북관계가 현정부에서 회복불능의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고, 비밀접촉 녹취공개가 실제 이뤄질 경우 국제적인 망신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특히 비밀접촉이 있었다는 1차 공개로 나름대로 ‘재미를 봤다’고 평가한 북한은 최악의 경우 녹취록까지 공개해 소기의 성과 달성을 추구할 가능성도 높다.
북측은 1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문답에 이어 9일 비밀접촉에 직접 참석했다는 국방위 정책국 대표의 문답 형식을 통해 비밀접촉 내용을 재차 폭로하면서 이명박 대통령까지 직접 끌어들인 것은 이런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1차 공개 이후 국회 공방 등을 통해 우리 정부가 난처한 입장에 처한 상황을 즐기는 셈이다.
예컨대 비밀접촉에 나섰던 김천식 통일부 통일정책실장이 “비밀접촉은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와 인준에 의해 마련됐다”고 말했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남측이 정상회담 논의를 위해 먼저 접촉을 제안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 이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북측이 먼저 접촉을 제안했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북측이 녹취록을 공개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우리 정부는 녹취록이 없다고 밝힌 것과도 다르다. 더구나 녹취록 공개가 현실화되면 남북 비밀접촉은 다시 한번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녹취록이 공개되고 그것이 사실일 경우 남측정부는 신뢰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3단계 안에서 남북대화를 건너뛰기 위한 전략적 포석도 깔렸다는 분석도 있다. 비밀접촉이 남측의 태도로 결렬됐다며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는 한편 자신들도 할 만큼 했다는 주장을 미국과 중국에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그간 남한 정부의 해명과 북측이 실무접촉 대표들을 숙청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자극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런 식의 공방은 남북 모두가 패자가 되는 만큼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한편 북측의 이런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고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북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있는 그대로 모두 밝히면 될 것”이라고 대응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1일 북한이 비밀접촉을 폭로하면서 추가 폭로를 하겠다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면서 “첫 공개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 당국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남남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또 “남북대화 거치지 않고 바로 북미대화로 가려는 의도”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