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950년 창립 후 49년 만에 대대적인 자체 개혁작업을 오는 3월 단행한다.한은 고위관계자는 8일 『직원 전문화, 의사결정구조 단순화 등 7개 부문의 개혁안을 최근 확정, 노조와의 협의 등 의견수렴 절차를 밟고 있다』며 『이르면 2월 중, 늦어도 3월부터는 조직개혁안이 집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이 마련한 조직개혁안은 △직군 전문화 △의사결정체계 축소 △직원평가제도 개혁 △직위체계 개편 △급여체계 개편 △목표성과비용 통제시스템 구축 △직원평가시스템 마련 등 7개 분야다.
한은은 이들 분야의 개혁을 위해 지난 1년간 작업을 벌여왔으며 특히 전철환(全哲煥) 총재 지시로 지난해 9월 총재 직속기구로 신설된 조직혁신 태스크포스가 4개월간의 작업을 거쳐 개혁안을 마련했다.
한은의 이번 개혁안은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권 전반에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직군제 도입, 의사결정구조 단순화, 전직원 연봉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이번 개혁안에는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직군제 도입=3월부터 한은 전직원들의 직군이 주특기별로 구분된다. 신입행원은 처음부터 직군별로 분류되며 한번 직군에 배치받으면 끝까지 그 직군에 남게 된다. 직원의 전문성을 제고하기 위한 조치로 미 연방준비이사회(FRB)를 벤치마킹했다.
기존 조직도 당분간은 그대로 존속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새로 도입될 7개 직군에 따라 개편된다.
인사와 급여체제도 각 직군별로 정해진다. 때문에 직군간 인사이동도 원칙적으로 없다. 현재 15개인 국내지점(강남지점 제외)은 부산·경남, 대구·경북, 호남, 충청, 경기, 강원, 제주 등 7개 권역으로 재편된다. 권역 내 인사이동이 원칙이다. 해외지점은 외환·국제금융 직군에 소속된다.
◆의사결정체계 축소=최고 7개인 현행 결재단계가 최고 3단계로 축소된다. 대부분 업무를 2단계로 처리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부총재·부총재보 등의 결재업무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총재 한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웬만한 업무는 직군 안에서 최종결재를 받도록 규정을 개정할 예정.
◆급여체계 개편=연봉제 도입이 핵심이다. 직군 내에서 직원의 업무성취도를 5단계로 분류, A급에게는 직군 내 동일직급 평균연봉의 110%를, B급 105%, C급 100%, D급 95%, E급 90%를 배분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근속연수 차이가 7년인 선후배간에도 급여액이 역전될 수 있다고 한은측은 설명했다. 노조 등 직원들의 수용 여부가 최대변수다. 한은도 내부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기 위해 다른 개혁방안은 시행시기를 3월로 잡고 있으나 연봉제와 직원업무 평가 시스템은 10월부터 실시할 계획이다.
◆직원평가 시스템=상사가 부하를 평가하는 하향평가제와 부하가 상사를 평가하는 상향평가제를 혼합한 평태의 직원 업무성취도 평가시스템이 10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지난 2년간 상사평가제를 시험 운용한 한은은 장기적으로 하향평가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나 제도 시행초기에는 상향평가제도에 더 큰 점수를 부여할 방침이다.
◆직위체계 개편=지금은 부장이 특정 보직을 그만두어도 다른 보직이 주어졌으나 직군제가 시행되면 부서간 이동이 힘들어 자리를 잃게 되고 전문인력이 사장될 우려가 많다.
이를 피하기 위해 부장직을 그만두어도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도록 조사역을 세분했다. 부장은 석좌조사역, 부부장은 수석조사역, 과장은 선임조사역에 해당된다.
◆목표 성과비용 통제시스템(OPACAS SYSTEM)=직원 한 사람의 업무에 투입되는 비용과 성과를 대비해 성취도를 평가하는 시스템. 무자본 특수법인으로 비용개념이 희박했던 한은의 업무스타일을 변혁시키기 위한 제도다.
◆의미=한은 조직혁신팀이 마련한 방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한은 49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의 변화가 온다. 특히 업무전문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개혁안은) 전혀 새로운 모습의 중앙은행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라고 말했다.
개혁안이 일단 자리잡으면 조직개편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돼 향후 2~3년 동안 한은이 내부개혁의 거센 물결을 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지금까지 조직을 개편한 적은 있어도 이처럼 강도높은 내부개혁을 시행한 적은 없다. 물론 조직 내부의 수용의지가 관건이다.
◆문제점=연봉제와 직군제에 대한 직원들의 반발심리가 이미 상당하다. 직원의 업무성취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와 금융정책직군 등 일부 직군에만 지원자가 몰릴 때 직원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도 문제. 따라서 개혁안의 내용과 시행시기가 다소 조정될 수 있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러나 全총재의 개혁의지가 워낙 강해 원안 그대로 강행될 가능성이 크다. 3월부터 시행될 조직개혁안을 놓고 한은 안팎이 벌써부터 술렁거리고 있다.【권홍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