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은퇴불안 신드롬'

은퇴 후에 얼마의 돈을 준비해야 고달프지 않게 여생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요즘 화두인 듯싶다. 보험ㆍ증권ㆍ은행 등 금융사들이 시작한 ‘은퇴 후 자금 마련하기’는 이제 매스컴까지 가세하고 있다. 금융사들의 홍보와 매스컴들의 보도가 경쟁적으로 이뤄지면서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여생에 필요한 자금을 준비하지 않으면 마치 인생에서 낙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특히 “당신의 노후걱정을 덜어드리겠습니다”고 해 철석같이 믿었던 국민연금마저 재정악화로 더 내고 덜 주는 쪽으로 바뀐다고 하니 초조와 불안감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금융사들 '돈 없으면 미래불안' 부추겨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은퇴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끝 모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사회의 공통된 병적징후를 신드롬이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에 ‘은퇴불안신드롬’이라는 증후군이 새로 추가된 셈이다. 그런 징후가 먼저 있어서 금융사들이 상품으로 개발했는지, 금융사들의 적극적인 선전공세에 우리 사회가 끌려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런 상품들의 공통된 특징은 사회적 불안감을 자극하고 증폭시키는 데 있다. 금융사들이 여러 조건 등을 감안해 제시한 생애필요자금은 대부분 수억원이 넘는다. 처음에는 몇 억원에서 출발하더니 그것도 인플레가 되는지 요즘에는 십억원이 넘는 것도 나왔다. 물론 VIP용이기는 하다. 부부가 1년에 해외여행도 가고 한 달에 한 두 번 골프도 치면서 평생토록 품위 있고 여유 있게 살기 위한 자금이라고 한다. 금융사들의 부자마케팅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이런 얘기를 듣는 보통 사람들이 받는 느낌은 무기력ㆍ무능력ㆍ박탈감ㆍ빈곤감이다. 은퇴 후에도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평생 일해도 몇 억원은커녕 몇 천만원도 모으기 어려운 사람들이 태반이다. 봉급받아 한달 쓸 생활비 떼고 공과금 내고, 카드대금 막고, 아이들 학비 대고 나면 남는 것이 없는 게 보통 사람들이다. 가계부채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이고 보면 그나마 적자가 나지 않는 게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마케팅은 특정계층을 겨냥한 판매전략이다. 금융사들의 부자마케팅에 국민 모두가 휘말릴 필요는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부자마케팅 전략에 휩쓸려 괜히 불안해 하거나 좌절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은퇴 후 얼마가 필요하다는 금융사들의 주장은 소비 중심적인 계산에서 출발한 것이다. 앞으로 얼마를 써야 하니 지금 얼마를 모아야 한다는 식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를 생산 중심적으로 바꾸면 된다. 소비 중심이 아닌 생산 중심으로 발상을 전환하면 돈을 많이 모으지 않고도 얼마든지 여생을 의미 있고 보람차게 살 수 있다. 해법은 씀씀이를 줄이고 먹고 입고 자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의식주를 최소한의 경비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나를 소개하면 소비만 있고 생산은 없는 도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은퇴한 후에도 공기 탁하고 물가 비싼 도시에 굳이 살 까닭이 있을까. 시골은 의식주를 작은 비용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먹을거리 비용이 절대적으로 싸다. 텃밭만 조금 가꾸어도 사시사철 어지간한 반찬거리는 모두 구할 수 있다. 제철 음식을 먹으니 웰빙이 따로 없다. 의(衣)는 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나이 들수록 몸을 가꿔야 한다지만 시골에 살면서 모양내면 입방아에 오를 뿐이다. 주(住) 역시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수도권만 조금 벗어나면 부부가 살기에 좋은 집을 싼값에 구할 수 있다. 물욕을 버릴 수만 있다면 전세나 월세가 더 낫다. 적은 돈으로도 보람찬 노후 보낼 방법 많아 돈이 있으면 편하다. 또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해서 굳이 불안하거나 초조해 할 필요는 없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두 팔과 두 다리가 건강해야 한다. 배우자의 건강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이 들수록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건강과 말벗이다. 이 둘만 갖출 수 있다면 인생 후반 그렇게 걱정할 것 없다. 그리고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하는데 언제 올지도 모를 이ㆍ삼십년 뒤의 일까지 걱정하면서 살 까닭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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